[북·미 ‘세기의 회담’] 70년 세계냉전 종착지 한반도, 다시 출발점에 서다
  • 이준섭 기자
  • 승인 2018.06.12 2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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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에서 본 데탕트 기록
닉슨 대통령, 중-소련 방문
냉전 허무는 데탕트 시작
1991년 남북관계 개선 논의
1·2차 남북정상회담 거쳐
평창올림픽 계기 ‘해빙무드’

분단 후 대립과 반목으로 점철된 기억을 지닌 한반도에서 질곡 많았던 역사의 페이지가 다시 쓰여 지고 있다. 2018년 6월 1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짧은 순간이었지만 회한의 악수를 통해 평화를 염원하는 민족의 열망에 다시금 희망을 품게 하면서다. 1948년 남북한에 서로 다른 성격의 정부 체제가 세워진 이후 딱 70년 만이다. 지구상 마지막 냉전의 상징인 한반도에서도 데탕트(detente)의 서막이 오르고 있다. 편집자

한반도에서 좀처럼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냉전의 구체제가 파열음을 내며 서서히 붕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이렇다 할 평화체제로의 전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던 순간, 역사는 그렇게 다시 한 번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다가왔다. 데탕트의 시작은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반공을 외쳤던 닉슨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과 전격적으로 만나면서 냉전 질서는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닉슨 대통령은 소련도 방문해 사회주의의 두 축으로 불렸던 중국, 소련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다. 체제 경쟁으로 상징되던 세계가 데탕트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동서(東西)를 경계로 진행되던 데탕트는 결국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기에 이르렀다. 1990년 소련 붕괴와 함께 동서 냉전이 급속한 해체의 길로 접어들면서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세력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권의 대결이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닉슨의 중국 방문을 시작으로 본격화한 데탕트는 20년 후 냉전 붕괴를 가져왔다. 그러나 한반도는 유독 이 과정에서 기회를 잡지 못하고 속절없이 시간을 보냈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평화체제 전환을 위해 1954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국전쟁에 참여한 유엔참전국과 세계 19개국 외상들이 모여 한반도 평화 통일 방안을 모색했지만 특별한 성과 없이 끝나버렸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등 남북 사이에서도 관계 개선을 통한 평화 체제 전환 논의들이 계속됐지만 숱한 대립 속에 그 의미는 퇴색됐다. 2000년대 들어 제1차 남북정상회담(김대중-김정일),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노무현-김정일)이 열리며 남북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공동 대응을 약속했지만 강대국 간 입장 차와 북한의 핵개발로 인해 부침을 반복하면서 정전체제가 오히려 굳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10년의 보수정권이 막을 내린 남한에선 진보성향의 새 정부가 출범했다. 그렇게 탄생한 문재인정부는 ‘한반도 운전자론’을 꺼내들었다. 그러나 정부 출범 직후부터 한반도엔 전쟁위기설이 횡행할 정도로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체제 전환이라는 목표를 제시했음에도 이를 긍정하는 반응이 많지 않았던 건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역사는 감쪽같이 전개된다는 속설은 어김없이 그 존재를 증명했다. 올해 새해 벽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내비친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중대한 변곡점이었다.

이후 남북은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관계 정상화의 물꼬를 텄고 4월 27일 판문점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며 ‘4·27 판문점 선언’이라는 값진 결실을 맺었다. 그리고 내친김에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를 통한 체제보장을 내걸고 70년 간 대립의 역사를 함께 써 온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다. 선대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걸어보지 못 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서로를 적대하며 살아온 70년의 회한이 불과 반년만에 믿을 수 없는 반전으로 이어지는 순간이자 마지막 냉전의 땅 한반도에 데탕트 시대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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