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난 괜찮겠지’가 만든 위험한 대한민국

#1. 지난달 당진영덕진고속도로 교량 작업 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 4명이 30여 m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근로자들은 휴일도 반납한 채 작업에 나섰다 봉변을 당한 것이다.

#2. 대전 서구 둔산동의 원룸 신축현장엔 10명 내외의 근로자가 철근 공사를 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쉽다. 이들의 나이는 모두 50대 이상으로 건설현장 경력은 각 30년 내외의 소위 베테랑들이다. 그러나 다들 안전모를 하지 않거나 안전모를 하더라도 고정을 하지 않았다.

건설업이 성장하기 위해선 범정부 차원의 정책도 필요하지만 건설업계가 돌이켜봐야 할 문제도 있다. 안전사고다. 건설현장에서의 사고는 생명과도 직결되는 만큼 중요한 문제다. 이에 정부 차원에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고 나서지만 좀처럼 건설현장에서의 사고는 사라지지 않는다. 건설현장에서 사고가 사라지지 않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안전 불감증을 꼽는다. 목숨이 오가는 현장에서 안전 불감증이 발생하는 이유, 그리고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을 살핀다.

◆건설현장 사고, 얼마나 발생하나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사고사망자 수는 1370명이다. 한해 평균 400명이 넘는 근로자가 목숨을 잃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망자는 중소규모의 건설현장에서 발생했다. 1370명 중 74.4%인 1024명이 120억 원 미만의 중소규모 건설현장에서 숨졌다. 특히 전체사망자 대비 중소규모 건설현장 사망자수는 2014년 74%에서 2016년 76%로 늘었다. 건설현장에서의 사망뿐 아니라 질병으로도 사망자가 발생한다. 지난해 업무상 질병으로 73명이 산업재해를 입었는데 전년(55명)보다 약 20명 늘었다. 충청권에선 지난해 88명이 건설현장에서 목숨을 잃었고 올해 벌써 7명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이처럼 건설현장에서의 사고는 매해 발생하지만 땜질식 처방만이 나온다. 건설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해 근로자가 죽으면 언론은 이를 집중 조명한다. 그리고 정부 차원에서 이를 방지할 대책이 발표된다. 현장관리 매뉴얼을 통해 안전사고가 발생할 요소가 있는 현장에 대해 벌금을 부과하는 등의 대책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은 탁상행정에 불과해 제대로 현장점검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현장점검을 실시한다 하더라도 건설현장은 이를 미리 인지하고 점검 시에만 안전장비를 하기도 한다. 의례적인 형식의 점검인 셈이다.

◆그들만의 세상, ‘공사판의 로마법’
건설현장에서의 사망사고 원인은 다양하다. 낮은 공사비, 현실적이지 않은 급여 체계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건설현장에서 인부들은 공통되게 낮은 안전의식을 꼬집는다. 워낙 고숙련 근로자가 많아 안전 불감증이 생긴다는 것이다.

대전 서구의 한 소규모 건설현장의 근로자는 “규모가 크지 않은 건설현장 근로자들은 자신들의 경력을 과신한다. ‘매일 하는 일인데 무슨 일 일어나겠어?’란 인식이다”라며 “새로운 인력이 들어와야 긴장감이 생기고 베테랑의 이러한 근거 없는 자신감이 사라지겠지만 인력 유입이 제대로 되지 않아 항상 건설현장 분위기는 늘어진다. 그러다 사고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건설현장에 신규 인력이 유입되지 않는 진입장벽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워낙 복잡한 그들만의 ‘업무용어’ 탓도 크다. 건설현장의 업무란 말보다 ‘노가다’, 끝보다 ‘시마이’란 단어가 실생활에도 쓰일 정도로 고착화된 게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할당량을 뜻하는 ‘야리끼리’, 지렛대란 뜻인 ‘빠루’, 운반이란 뜻의 ‘곰방’, 유리란 뜻인 ‘가리쓰’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모두 일본어의 잔재로 건설업이 국내에 정착하기 시작한 일제강점기 시절의 영향이다.

발음은 비슷하지만 뜻이 전혀 다른 용어도 건설현장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건설현장에선 각목을 뜻하는 ‘가꾸목’, 틀이란 단어 대신 ‘가꾸’란 말을 쓴다. 줄자는 ‘겐나와’, 쇠망치는 ‘겐노오’로 불린다. 같은 용어라도 지역마다 다른 단어도 있다. 조공, 즉 전문기술자의 부하직원은 ‘데모도’라고 하는데 다른 지역에선 ‘디모도’나 ‘도모도’라고 한다. 집중하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도 몰라 신규 인력은 못 알아듣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건설현장의 일이 워낙 고된 일이어서 신경이 날카로운 상황이 많아 신규 인력이 베테랑인 근로자에게 뜻을 물으면 혼나기 일쑤고 욕을 먹는 경우도 다반사다.

과거 학비를 벌기 위해 주로 방학 때 건설현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한 회사원은 “처음 건설현장 갔을 때 워낙 많은 용어가 있는 걸 알고 놀랐다. 뜻을 몰라서 매일 건설현장 상시 근로자에게 욕을 먹었다”라며 “건설현장에서 쓰는 단어를 따로 찾아본 적도 있을 정도다. 몸이 힘든 건 둘째 치고 욕먹는 게 싫어 일하는 도중에 도망간 친구도 여럿 봤다”고 말했다.

◆자구적인 노력, 그리고 정부의 행정적 지원이 필요할 때
결국 건설현장에서 쓰이는 용어를 우리말로 순화해야 신규 인력의 유입도 수월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50년 가까이 고착된 ‘공사판의 로마법’을 일순간 바꾸는 건 쉽지 않다. 국립국어원이 잘못된 단어를 순화하는 일명 ‘다듬은 말’ 작업에 나선지 수년이 흘렀으나 여전히 ‘누리꾼’을 ‘네티즌’으로, ‘판촉홍보’를 ‘프로모션’으로, ‘노화방지’를 ‘안티에이징’으로, ‘신제품발표회’를 ‘론칭쇼’로, ‘끝장승부’를 ‘치킨게임’으로 사용하는 게 대표적이다. 물론 억지스러울 정도의 다듬은 말도 있지만 국립국어원은 어떻게든 외래어를 순화하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로부터 탄핵 선고를 받을 당시의 선고문은 아직도 회자된다. 당시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은 탄핵 선고문을 22분 동안 낭독했다. 어려운 법조계의 용어가 난무할 거란 예상과 달리 선고문은 누구나 듣기 쉬운 정도의 용어가 대거 등장했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이유에 대해 쉽게 알 수 있었다. 10~30대가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선고문이 쉬워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는 글이 많았다. 이에 더 나아가 간단한 법조 용어를 설명하는 글이 상당 시간 인기를 끌었다. 국민들이 법률 용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법조계에선 최근 ‘알기 쉬운 민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어려운 법률 용어를 순화하기로 했다. 그리고 법률을 개정해 총 1118조의 민법 조문 중 1106개의 조문을 순화·정비하기로 했다. 헌재에서의 쉬운 선고문 낭독이 시발점이 돼 어려운 법률 용어 순화 작업 단계까지 도달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건설현장, 특히나 건설현장의 근로자가 깊게 생각해야할 부분이다. 그들의 ‘공사판의 로마법’을 없애는 자구적인 노력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 역시 발맞춰 행정적인 지원을 나서야 한다. 정부가 시행 중인 안전점검 외에 관련 교육을 병행하는 등의 방안이 긍정적으로 검토돼야 한다. 이를 통해 신규 인력의 건설현장 유입이 원활해진다면 긴장감이 유지돼 안전사고 발생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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