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전 국무총리(JP)의 별세 소식을 들은 충청인들의 마음은 어떨까? 그의 정치일생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만 충청인들의 마음엔 아쉬움이 서려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그가 충청지역의 맹주로서 한때나마 충청 대망론에 희망을 가져다준 인물이었지만 이를 이루지 못하고 영원한 2인자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풍운의 정치인’이란 별칭이 말해주듯 JP의 일생은 한국정치사처럼 파란만장했다. 권력의 심장부에 있다가도 하루아침에 유랑길로 내몰리기도 했고, 정치탄압으로 숨죽였다가도 다시 화려하게 재기하며 여와 야를 넘나들었다. 여기에 한국 현대정치사의 주역이었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더불어 3김 시대의 한 축을 지탱한 주인공이기도 했다.

JP의 일생이 부침과 영욕으로 교차하듯 그에 대한 평가 역시 뚜렷하게 엇갈린다. 그는 한국전쟁 전후 한국의 산업화를 주도하며 이뤄낸 실력있고 소신있는 정치인이자 최초로 정권교체를 이루는 데 일조를 담당한 킹메이커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반면 5·16 쿠데타로 한국의 민주화를 지체시키고 독재를 강화했으며, 3당 합당으로 한국정당정치의 퇴행을 가져오고 지역주의를 선동하여 권력을 연장한 기회주의적 처세의 달인이라는 혹평도 뒤따른다.

이 같은 엇갈린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 현대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거목임에는 틀림이 없다. 비록 권력을 잡지 못하고 영원한 2인자로 남았지만 두 번에 걸친 국무총리를 비롯해 정당대표와 최고위원 등을 역임하며 한 시대를 풍미한 걸출한 정치인이었다. 게다가 정치인이면서도 인문학적 교양을 지향하고 예술을 사랑했고 수사의 달인으로 평가받을 만큼 유명한 어록을 많이 남기기도 했다.

특히 충청권으로 국한해보면 JP는 충청대망론의 본류로서 한동안 충청인들의 희망이었다. 박정희 정권시절 2인자로서 다음 후계자론이 나오면서부터 시작된 충청대망론은 그의 정치일생만큼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신군부에 의한 핍박과 신민주공화당 창당, 3당합당 참여로 민자당 대표, 자민련 창당과 15대 총선서 50석 확보, 그리고 DJP연합으로 이어지는 그의 정치역정은 충청대망론과 연결돼 충청인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았다.

그는 정계은퇴 후에도 영원한 보수정객으로 정치적인 이슈가 있을 때마다 해야 할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때문에 진보주의자들에게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보수정객들에겐 어른으로 대접을 받았다. 특히 충청인들에게는 누가 뭐라 해도 영원한 지역의 맹주로서 자타가 공인하는 정치지도자였다. 그에 대한 진짜 평가는 이제부터 역사가 기록할 것이다. 김 전 총리의 영전에 삼가 조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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