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道 걷는 선비 리더십으로 … 더 행복한 충남 실현”

인터뷰하는 양승조 충남지사 당선인. 더행복한충남준비위원회 제공

인터뷰 내내 그와 묘하게 겹쳐지는 얼굴이 떠올라 혼났다. ‘빨간불에 서고 파란불에 간다’는 말을 듣고부터였다. 그 얼굴은 차 한대 다니지 않는 좁은 도로를 건널 때도 사선으로 질러가지 않고, 빛바래 보이지도 않는 하얀 선의 횡단보도를 찾아 멀리 돌아갔다. 운전을 배우면서 어쩌다 신호를 어기기라도 하면 호된 꾸지람이 돌아왔다. 그런 그 얼굴이 무서웠고, 질리도록 답답했다. 자식이 곧고 올바른 삶을 살기를 바란 부정(父情)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밀어내면 되살아오는 얼굴과 인터뷰이의 ‘선비’ 같은 말간 얼굴이 자꾸 오버랩(overlap)된 이유다. 마주한 그는 허리를 곧추세운 바른 자세로 앉아 질문에 답했다. 제스처가 많지 않고, 말은 간결하다. 4선 국회의원이라는 화려한 정치경력을 자랑하며 단숨에 광역단체장 자리를 꿰찼다기보다 원래 거기 있던 사람 같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선거는 끝났고 내게 주어진 소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했다. 26일 충남도청 별관에 마련된 인수위원회 집무실에서 양승조(59) 충남도지사 당선인을 만났다.

인터뷰하는 양승조 충남지사 당선인. 더행복한충남준비위원회 제공

다음달 2일 38대 충남지사로 공식 취임을 앞두고 있는 양 당선인은 선거 뒤 곧장 도정 인수위원회인 ‘더행복한충남준비위원회’를 출범하고, 매일 밤늦게까지 업무보고 등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그는 인수위원들에게도 “준비위가 가동되는 기간 모든 걸 포기하고 업무에 집중해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선인 스스로 정해진 일정 하나 거르는 법이 없으니 준비위 전체가 사실상 비상체제로 운영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유의 지사 궐위사태와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당선인 신분으로 주요 정부부처와 국회를 찾아가 국비확보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숨 돌릴 겨를조차 없는 강행군이다.

대학 시절의 양승조 당선인. 더행복한충남준비위원회 제공

210만 도민들의 삶을 흔들림 없이 책임져야 할 도백(道伯)이기에 건강관리법부터 물어봤다. 양 당선인은 잘 알려진 대로 마라톤 마니아다. 42.195㎞ 마라톤 풀코스를 9번 완주했다. 마라톤을 시작한 계기가 재미있으면서도 애처롭다. 6번 실패 끝에 7번째 도전에서 꿈을 이룬 사법고시 얘기를 꺼낸다. “번번이 사시에 떨어지니 참 힘들었죠. 마지막엔 0.17점 차이였던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체력이 약해서 그런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채 200m도 뛰지 못했지만 차츰 몸이 적응하기 시작했고 시간과 거리를 늘려갔다.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는 폭설이 내리든 장마가 지든 무조건 나가 운동장을 달렸다. “모르는 사람들은 ‘저 사람 고시공부 오래하다 드디어 미쳤구나’ 했을 거예요.”(웃음)

사법연수원 제27기 춘계체육대회 단체사진. 더행복한충남준비위원회 제공

“달릴 때 몸 속 세포가 살아나는 것 같다”고 느낄 정도의 경지에 오르며 체력을 단련한 젊은 양승조는 1995년 37회 사법고시(연수원 27기)에 당당히 합격한다. 그의 나이 서른여섯이었다. 고향 천안에서 변호사를 개업하고 여성과 노동자 등 사회적약자 대변에 노력하던 그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열린우리당의 천안갑 후보로 출마해 국회 입성에 성공한다. 법률가에서 정치인으로 ‘인생2막’이 시작된 것이다.

양 의원은 17대국회 전반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활동하다 후반기 보건복지위원회로 자리를 옮겼고 이후 내리 4선의원을 지내는 동안 떠나지 않았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게 자신의 정치적 사명이라고 생각했단다. 이른바 그의 애민(愛憫) 정신은 선친인 유학자 양태석으로부터 영향 받은 바 크다. “유학자로서 아버지는 평생 의관 정제한 가지런한 모습으로 충효(忠孝)를 말씀하셨어요. 또 애민과 애국을 강조하셨죠. 제게 유학의 가르침을 강요하진 않으셨지만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천안시선거관리위원회서 열린 17대 총선 당선증 교부식. 오른쪽은 부인 남윤자 씨. 더행복한충남준비위원회 제공

옳다고 믿으면 물러서지 않는 고집과 강단, 단순해 보이면서도 원칙을 지키겠다는 신념이 담긴 ‘빨간불에 서고 파란불에 간다’는 인간 양승조의 좌우명까지 모두 선친의 유훈(遺訓)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명박정부의 세종시수정안에 맞서 22일 동안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벌이고,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쓴소리’ 한번 했다가 국회의원 제명안 제출 등 된서리를 맞았지만 끝내 무릎 꿇지 않았던 것도 ‘선비’ 같은 그의 성정을 말해준다.

양승조를 따라다니는 또 다른 수식어는 ‘성실함’이다. 초선의원 시절부터 서울에 셋방 하나 구하지 않고 14년 동안 기차와 버스 등 대중교통을 타고 출퇴근했다. 그러면서도 본회의 참석률은 97.2%로 100%에 가깝고 의정활동 기간 419건의 법안을 대표발의해 136건이 통과됐다. 18대 총선 당시 충청을 기반으로 한 자유선진당의 압도적인 세몰이에도 민주당 당적으로 유일하게 당선되며 4선 중진의원까지 오른 배경이다.

관록의 정치인에게도 충남지사로의 변신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큰 변수가 없는 한 ‘5선의 꽃길’은 예약된 것이었고 가족들의 걱정도 컸다. 그럼에도 양 당선인은 충남도민의 준엄한 명령과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1700만 촛불정신은 저에게 중진의원이라는 위치에 걸맞은 큰 역할을 요구했습니다. 지난 14년간 저를 키워준 충남에서도 자치분권 시대를 맞아 깊은 분권철학과 경륜, 다방면에서 준비된 사람을 필요로 했고요. 충남의 아들로서 책임감과 보은(報恩)의 마음도 컸습니다.”

그는 올 1월 일찌감치 충남지사 출사표를 던지며 도내 전역을 순회하는 민생탐방에 나섰고, 복지정책을 중심으로 15차례에 걸친 분야별 공약을 쏟아냈다. 당시 양 후보는 아이 키우기 좋고, 노인이 행복하며, 사회양극화가 해소된 ‘복지수도 충남’을 기치로 내걸었다. 일자리, 보건, 환경, 보육, 교육, 문화, 주거 등을 포괄하는 확장된 개념의 복지정책으로 도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겠다고 설파하면서다. 충남도민들은 이에 화답하듯 61만 5870표(62.6%)를 몰아주며 복지도정의 책무를 맡겼다. 양 당선인은 “그간 키워 온 꿈 ‘더 행복한 충남’을 실현하고 충남의 새로운 미래 ‘대한민국 복지수도 충남’을 만들어 보이라는 도민의 명령을 충실히 받들겠다”고 거듭 각오를 밝혔다.

이와 함께 양 당선인은 충남지사로서 국가가 지원하는 기본 아동수당 10만 원에 출생 후 12개월 동안 10만 원을 추가로 지급하는 ‘충남 플러스 아동수당’ 도입, 도내 화력발전소 14기를 2026년까지 친환경발전으로 전환하는 미세먼지 개선책, 혁신도시 지정과 수도권규제 완화 정상화를 통한 기업하기 좋은 충남 건설, 고교 무상교육 및 무상급식 시행, 70세 이상 노인 버스비 무료화 등 5가지 핵심공약을 반드시 실천하겠다고 약속했다. ‘충청도 선비’ 양승조가 이끌어갈 민선 7기 충남도정이 지금 막 ‘파란불’로 바뀌었다.

내포=문승현 기자 bear@ggilbo.com

 

부모님과의 한때. 선친인 유학자 양태석과 어머니 이종기. 뒤로 어린 시절의 양승조가 서 있다. 더행복한충남준비위원회 제공

◆양승조 당선인=1959년 충남 천안군 광덕면에서 유학자 양태석과 어머니 이종기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천안보산원초교, 천안광풍중학교를 거쳐 선친의 바람대로 서울로 유학, 중동고와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했다. 4선의원 재임기간 국내에선 개념조차 없던 ‘아동수당’ 관련법안을 선도적으로 발의해 여론을 환기했고 지난해 대선에서 모든 후보가 공약화했다. 이번 선거에서 공개한 전재산은 6억 1225만 원이다. 그는 “돈이 없으면 생활이 불편하지만 너무 많으면 분수를 모르게 된다. 돈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경계한다”고 말한다. 담배는 아예 배우지 않았고 술은 소맥이든 막걸리든 마다하지 않는다. 부인 남윤자 씨와 1남1녀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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