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대망새의 통치 ⑦

드디어 결혼식이다. 대망새는 미리은의 손을 잡고 높고 널따란 바위위에 올라섰다. 바위 아래 또 다른 바위에는 산해진미가 가득했다. 그 뒤로 소리기와 아까비가 서고 다른 신랑신부들이 두 줄로 길게 늘어섰다. 그날은 올래의 매득과 름, 가시잘과 붕근노를 비롯한 팬주룽 백성들이 대부분 참석을 했는데 검맥질의 너른 들판을 가득 메워 지평선까지 이어졌다. 백성들의 중간 중간에 있는 바위에도 올래의 바다음식과 검맥질의 육고기, 과일 등이 크고 작은 토기에 다뿍다뿍 담겨있었다. 바위가 없으면 들풀로 정교하게 짜서 상을 만들고 그 위에 음식들을 차렸다.

솔롱고스가 합동결혼식의 주례를 맡았다. 솔롱고스는 코가 빨간 백성 한 명이 술병에 굴먹굴먹 담긴 과일주를 따라 홀짝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편하게 마음 것 먹어도 좋다는 신호를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그의 여자가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주책 좀 그만부리라고 핀잔을 주었다.

솔롱고스가 바가나치 대망새의 치적과 미래의 희망에 대한 연설을 하고 합동결혼식의 의미를 되새겼다. 눈꺼풀이 감길 것 같은 연설이 끝나자 천여 명의 궁수가 화살에 불을 붙여 검맥질의 들판을 향해 쏘아 올렸다. 대낮에 화려한 불꽃놀이가 따로 없었다. 바싹 마른 들판이 화염에 휩싸였다. 불은 삽시간에 번져 활활 타올랐다. 그러자 백 명의 신랑이 바가나치 부부가 올라선 바위주변을 빙빙 돌며 자기만의 개성 있는 춤을 강열하게 추었다.

춤이 끝나자 이번에는 각자의 신부를 번쩍 들어 올려 빙글빙글 돌았다. 소리기가 새털 같은 아까비의 몸을 번쩍 들어 올리자 아까비는 소리기의 목을 꼭 끌어안고 우람한 가슴에 고개를 푹신 묻었다. 상당수의 신부들은 뚱뚱했는데 허약한 체질의 신랑들은 함부로 신부를 들다가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다. 대망새도 미리은을 번쩍 들어 빙글빙글 돌렸다. 미리은의 입에서 옅은 신음이 흘러 나왔다.

불화살을 쏘아 올려 들판을 태우는 의식은 영원한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지만, 언젠가 들판에 먹을거리들을 심어야겠다는 대망새의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강열한 춤은 자신의 신부와 팬주룽을 적으로부터 지켜내겠다는 용맹의 표현이었고, 신부들기는 확실한 부계사회로 이어짐을 백성들에게 공표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 모든 의식이 대망새의 상상과 계획에서 창조된 것들이었다.
“……”

신부들기가 끝나자 솔롱고스는 장내를 엄숙하게 했다. 결혼식을 마쳤으니 팬주룽의 신들에게 보고를 해야 했다. 솔롱고스는 바가나치를 제주로 모시고 태양과 땅, 물의 신께 성스러운 기도를 올렸다. 이제 마지막으로 꽃잎 뿌리기 행사가 남았다. 팬주룽의 어린이들이 봄과 여름에 따 말린 꽃잎을 가을의 꽃잎에 섞어 하늘을 향해 뿌렸다. 신랑 신부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꽃잎들이 꿈결처럼 신비로운 세상을 만들고 있었다. 물소와 산양, 코뿔소 뿔로 만든 피리에서 나는 소리가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하늘로 올라가자 드디어 대화합의 잔치가 열렸다.

백성들은 앞에 놓인 산해진미를 마음껏 먹고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 코가 빨간 백성의 여자는 남자에게 이제 술을 먹어도 좋다는 의미의 눈짓을 하고 자신도 한잔 따라 꼴딱꼴딱 마셨다. 잔치는 어슴푸레 할 때가지 계속됐지만 끝날 줄을 몰랐다. 낮 동안 술에 취한 태양이 까딱까딱 기울어 어둠이 태양을 완전히 삼켜버리자 백성들은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갔다. 하루가 한 달처럼 길게도 느껴졌던 늦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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