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위원장

식당이나 찻집에 갈 때마다 귀에 거슬리는 말이 있다. '주문 도와드릴게요', “결제 도와드릴게요”와 같은 말이다. 내가 메뉴를 고르지 못하고 쩔쩔 매고 있다면 주문을 도와주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내가 결제하는 방법을 몰라서 당황하고 있을 때라면 마땅히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주문 도와드릴게요’의 뜻은 주문을 받겠다는 뜻이므로 ‘주문 받겠습니다’, ‘주문하세요’, ‘주문하시겠습니까?’ 정도로 하는 것이 적절하다. 마찬가지로 ‘결제 도와드릴게요’는 ‘결제하시겠어요?’, ‘결제해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면 충분하다.

예의바른 표현을 한다는 것이 도리어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는 참 많다. 특히 서비스업종에서는 손님에 대해 무조건 친절과 순응을 강조하다 보니 사람이 아니라 사물에 높임말을 쓰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본다. ‘주문하신 녹차프라푸치노 나오셨습니다’, ‘커피 한 잔에 7000원이십니다’, ‘주문하신 옷 사이즈가 없으세요’와 같은 말들이 그렇다. ‘마감이 오늘까지시거든요’, ‘여성분들’, ‘색상이 정말 고우세요’ 등 ‘-시-’와 ‘-분-’을 넣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실 우리말은 높임말이 다양하게 발달해 있기 때문에 일상 생활에서 제대로 쓰기가 쉽지 않다. 지나친 높임말이나 잘못 쓰이는 높임말을 듣는 순간 어색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겸손과 친절의 표시려니 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홍길동 선생님이 나와 계십니다’ 하는 극존칭을 방송에서 흔히 듣는데, 시청자와 청취자를 배려한다면 ‘나오셨습니다’ 정도가 좋다. ‘할아버지, 아버지는 아직 안오셨습니다’ 하는 말도 흔히 보는 잘못 중의 하나다.

높임말을 쓰는 것만 몰두하다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높임말을 쓰는 경우도 자주 있다. 가령 ‘그 분은 제가 아시는 분’이라고 하면 그 분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높이는 말이 된다. 높임말을 연달아 쓰는 경우도 주의해야 한다. ‘음식 드세요’, ‘음식 들어보세요’는 맞는 표현이지만 ‘음식 드셔보세요’는 틀린 것이다. 동사의 단순한 나열인 경우에는 각 동사에 높임을 나타내는 어미를 붙이는데, 앞 동사에서는 그 어미를 생략해도 괜찮다. 그래서 ‘읽으시다가 주무셨다’와 ‘읽다가 주무셨다’가 모두 맞는 표현이다.

사람을 만날 때 높임말을 제대로 쓰는 것은 중요한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말을 높이고 낮춤에 따라 두 사람 사이에 불평등한 위계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어린 시절에는 나이 차이가 다소 벌어져도 말에 높낮음이 없고 평등하다. 중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사정이 달라져서 한 학년 차이가 나도 한쪽은 높임말을 쓰고 한쪽은 낮춤말을 쓴다. 이런 말을 통해 권위주의적 서열과 위계가 고착화된다.

나이가 다르고 일터에서 직위가 다르더라도 서로 높임말을 쓰면서 평등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민주화의 한 모습이다. 부부 사이에도 일방적인 지시와 복종의 말이 아니라 서로 높임말을 쓰거나 동등하게 낮춤말을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성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차별적인 말을 쓰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이 발표한 ‘서울시 성평등 언어사전’을 보면 쓰지 말아야 할 성차별 언어가 수두룩하다. 직업 앞에 붙이는 ‘여’를 빼기, 행동 등에 붙이는 ‘처녀’를 ‘첫’으로 사용하기, 여성을 대명사로 가리킬 때 ‘그녀’가 아니라 ‘그’를 쓰기, ‘저출산’이 아니라 ‘저출생’으로 쓰기, ‘미혼’이 아니라 ‘비혼’ 쓰기 등은 모두 여성들이 쓰지 말 것을 제안한 차별적인 말들이다.

말과 생각과 행동은 서로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 받는다.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 생각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면 행동을 바꿀 수 있다. 높임말이든 낮춤말이든 바르게 말하기에서 더 나아가 말의 민주화가 중요하다. 물론, 말의 민주화를 이루는 과정에서도 기득권의 저항과 그것을 뛰어넘는 투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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