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명예교수

세상에는 아름답고 산뜻한 일들도 많지만, 한 편 어처구니없는 일들도 참 많다. ‘맑은 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이 있듯이 전혀 자신이 어떻게 하지 않은 일인데 그만 태어나거나 사는 것 때문에 평생을 커다란 짐을 지고 사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계몽된 사회가 되어서 달라지기도 하지만, 아직도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엉뚱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옛날 신분제도가 엄연했던 시절, 사람으로 태어났으면서도 사람으로 살지 못하던 때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던가? 노예제나 신분제가 없어진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지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새로운 노예제나 신분제에서 사는 것 같은 것들이 얼마나 많던가? 요사이 우리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갑질’이라는 말은 바로 그런 사회세태를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차라리 신분제가 공식화된 때라면 그러려니 하고 살 수도 있는 것이었겠지만, 그런 것들이 없어진 상태에서 억울한 일을 당할 때는 참으로 더 슬프고 아프다.

지금 생각을 모아보려는 미혼모나 그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을 생각할 때는 참으로 먹먹하다. 사람들 관계에는 정상이라거나 비정상이란 말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남녀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동시에 그런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따라다니던 평가나 말들도 마찬가지로 ‘정상’, ‘비정상’이란 말로 평가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옛날 ‘적자’라거나 ‘서자’ 또는 ‘사생아’란 말로 인간을 구분하던 패악한 제도 아래에서 얼마나 억울하고 슬픈 일들이 많았던가? 엄밀히 따지면 ‘사생아’는 없다. 다만 사회제도나 관습이 인정하지 않는 관계와 탄생이 있을 뿐이다. 그것들은 끊임없이 변한다. 한 시대의 잣대로 온 시대의 상황을 다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 ‘미혼모’라는 딱지가 붙은 사람들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산다.

간혹 공개해서 ‘나는 미혼모다. 당당히 아이를 키우면서 살겠다’고 선언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용기를 내고 사는 경우는 그만큼의 내공이 쌓이고 의식이 있는 특수한 사람에 국한돼 있다. 어떤 산모라도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 아주 지극히 당연한 정상생활을 하여야 한다.

혼인관계로 출산한 산모들과 꼭 같이 미혼모 역시 존중되고 그 현실이 인정되어야 한다.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일단 그 상황 자체를 인정하여야 한다. 이렇게 되지 않으니 미혼모가 낳았다고 추정되는 신생아들이 변소나 쓰레기통이나 하수구에 버려지는 참극이 벌어지는 일이 있지 않던가?

또 이렇게 태어난 상당히 많은 수의 어린이들이 어린이 보호시설에 들어가기도 하고, 또 다른 집으로 입양되어 가거나 위탁부모를 찾게 되고, 심지어는 다른 나라로 입양 절차를 거쳐서 떠난다. 나중에 장성하여 그들이 생부모를 찾는 일은 눈물겹도록 간절하고 지극하다. 그러나 찾지 못할 때의 좌절과 찾은 뒤의 회한은 씻을 길이 없다.

혼인제도나 그 관계에서 태어나는 새로운 생명에 대한 태도는 시대가 바뀌면서 계속하여 바뀌어 왔다. 앞으로도 계속하여 진화하고 바뀔 것이다. 한 동안 이혼을 범죄시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문제가 있는 비정상으로 보는 때도 있었다. 그 때는 이혼한 엄마 혼자 아이를 기르는 것을 또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다. 지금은 그에 대한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아직도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것이 역시 미혼모요, 그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다. 옛날 가계를 잇기 위하여 양자제도를 공식화하던 때 아이를 떠나보내는 젊은 어머니들의 맘과, 부모를 떠나서 엄격하게 교육하는 새로운 가정으로 가서 온갖 어려움을 참으면서 살아야 했던 어린아이들의 뒷이야기는 인륜을 생각할 때 얼마나 잔인한 것들이었는가를 상상할 수 있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아이들은 자기를 낳은 엄마나 아빠와 함께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 설혹 그 부모가 탁월한 인격을 갖춘 분들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신과 같이 존귀한 존재다. 또 아이를 낳은 엄마에게 모든 아이들은 아주 존귀한, 거룩한 생명체다. 그런데 공식으로 혼인예식이란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리 사회에서 냉대를 받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 어떤 형태가 되었든 아이를 낳는 행위 자체와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매우 거룩하고 존귀한 일이다. 다만 제도와 관습과 형식이 그 일에 대하여 편견을 가지고 대하게 한다.

평화로운 사회를 위하여, 생명이 생명으로 제대로 살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제도를 바꾸고, 의식과 관습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의 의식이 새로워져야 할 것이다. 미혼모들이 아이 낳는 일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아이들을 당당하게 기를 수 있도록 제도가 뒷받침하여 주어야 한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이 부모를 떠나서 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물론 그렇게 아이를 낳게 한 남성에게 아이와 엄마에게 제대로 된 의무를 이행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동시에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이 성장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어떤 편견과 제도의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해야 한다. 어떤 제도나 관습으로 거룩한 생명들이 피멍이 들어 일생을 고통과 괴로움과 원한스럽게 살게 할 수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