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형직 을지대 교목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어요.”

기막힌 자기 사연을 이야기하다말고 격한 감정에 울컥하며 내담자가 한 말이다. 상담실 밖까지 울음소리가 새어나와 다소 민망하고 난처했지만 내담자의 울음소리는 쉽게 그치질 않았다.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않으면 안될 만큼 그는 매우 힘들어 했다. 사건과 문제가 그의 삶을 더욱 무겁게 했지만 누구에게나 삶은 어렵다.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건 마음먹은 대로, 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노력하면 될 것 같고 땀 흘리면 손에 쥘 것 같은데 가혹한 현실은 생각과는 다르다. 그 때문에 온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을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것이 정말 행복의 조건인지는 모르겠지만 원하는 것을 얻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모두 원하는 것은 언제나 제한되고, 하고 싶어 하는 일은 아주 일부의 사람에게만 돌아간다. 하고 싶어 하는 것,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경쟁을 해야 하고 경쟁에는 어떤 형태로든 갈등과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더욱이 경쟁에서 패하면 만회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한다면 죽기살기의 경쟁은 피할 수 없는 노릇이다. 욕구는 버리지 못하고 능력은 미치지 않기 때문에 삶은 늘 무겁기만 한 것이다.

유엔이 발표한 2018 세계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156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국민 행복도 결과에서 우리나라는 57위에 올랐다. 행복에 관한 생각들이 제각각이라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 수치상으로도 딱히 행복한 나라는 아닌 것 같다. 행복을 해치는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소득과 건강 문제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에서, 세계 최고수준의 평균수명을 사는 사회임에도 물질과 건강에 집착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과거 쌀독에 쌀이 채워지는 것으로 뿌듯함을 느끼던 시절에는 조금만 더 여유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았다. 짜장면 한 그릇에 아이들은 천국을 경험했고 공부를 잘 하지 못해도 크게 기죽지 않았다. 지금보다 훨씬 덜 여유롭지 않았어도 그 시절이 좋았다고 느껴지는 것은 괜한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생로병사의 자연섭리를 벗어날 수 없다면 궁극적으로 맞이하는 건강과 죽음의 문제는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늘보다 내일을 염려하며 살아간다. 오늘 하고 있는 일, 내일은 하지 못할까 걱정이고 오늘 건강, 내일은 지킬 수 없을까 걱정이다. 오늘 먹은 밥, 내일은 먹지 못할까봐 걱정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걱정은 반드시 현실이 된다. 수입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고 건강은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나 그래도 내일 염려를 오늘의 희망으로 번역하며 살아야 한다.

호주 간호사 출신의 브로니 웨어가 저술한 책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가지’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일로 너무 열심히 일하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너무 열심히 일하다보니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고 배우자에게 소홀했다는 반성이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고자 열심히 일한 것인데 오히려 가장 후회되는 일로 열심히 일한 것을 꼽은 것이다.

히브리의 한 시인은 “인생은 그날이 풀과 같고, 피고 지는 들꽃 같아, 바람 한번 지나가면 곧 시들어, 그 있던 자리마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노래했다. 삶이 참 무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내가 지금 여기서 하늘을 보고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격할 만한 일인가. 무상한 삶을 살면서도 불멸의 의미를 추구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오늘의 괴로움은 오늘로 족하고 내일의 염려는 내일의 것이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것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할 이유가 없다. 오늘은 어제 살아온 삶의 결과고 오늘 삶에 따라 내일은 주어질 것이기에 그저 오늘을 담담히 살아야 한다.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되는 세상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 내일을 위해 오늘을 놓칠 수는 없다. 정작 오늘 내게 주어진 희망, 오늘 주어진 삶의 무게를 외면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희망은 내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 기쁨을 통해 만들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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