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우 공주대 교수

모든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생긴 모습이나 처지가 다른 만큼 생각도 다르게 마련이다. 그야말로 백화제방(百花齊放)인 것이다. 그러나 백화제방하는 개인적 자유를 무제한으로 인정하게 되면, 사회의 발전은 물론이고 그 존속조차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한 사회의 원심력으로 작용하는 개인적 자유를 양보하는 시민의 의식이 성숙되고, 그러한 시민의식을 결집할 수 있는 조직이나 체제가 갖춰져야만 그 사회는 구심력을 확보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공공(公共)의 이상을 지향하는 여론형성의 과정을 통해 그 사회의 구심력이 증대되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공론의 장에 나타나는 다양한 견해들은 보수와 진보의 두 관점으로 수렴해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대체로 보수주의는 전통을 옹호하고 기존 사회체제의 유지와 발전에 비중을 두기 때문에 급진적 개혁보다 안정적 발전을 지향한다. 자유시장경제의 원리를 신봉하며, 국가에 의한 평등 배분보다 개인의 경쟁을 통한 총체적 국부의 증진을 추구하는 입장이다. 한편 진보주의는 기존의 사회체제에 비판적이며 새로운 변혁을 추구하는 성향을 보이기 때문에 안정보다 급진적 개혁을 추구한다. 자유경쟁의 허용을 반대하며, 소외계층을 구제하는 평등 배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입장이다. 얼핏 생각하면 보수와 진보가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것 같지만, 사회와 국가의 안정과 경제발전을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지향에 있어서는 하등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차이가 있다면 그 방법이나 노선이 다른 것뿐이다.

보수와 진보는 시비곡직으로 판가름되는 것이 아니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에 팽배돼 있는 보수와 진보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국론분열의 수준이 봉합이 어려운 지경에 이른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이보다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없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당파싸움에서도 소위 ‘진영논리’에 갇혀 화합의 정치를 이루지 못하고 정치적 보복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반복한 끝에 파국에 이르게 되었던 뼈아픈 경험이 있다. 최근 우리 사회의 국론분열의 상태를 보여주는 여러 징표들을 보면 사분오열이란 말이 오히려 부족할 정도이다. 금수저와 흙수저를 구분하는 빈부간 갈등을 비롯해 남북간, 남녀간, 노사간, 도농간, 세대간, 지역간 갈등과 격차 등 그야말로 국론이 갈가리 찢어진 형국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의 개념이나 관점에 따르는 방법상의 차이를 두고 시비곡직을 따지는 것보다 두 관점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흑백논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나만 옳고 너는 잘못’이라는 고정관념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보수적인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을 ‘수구꼴통’이라고 하거나 진보적 견해를 피력하는 사람을 ‘진보빨갱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국론의 분열을 끝내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고 하면서 1970년대 중국의 개혁과 개방을 주장했던 등소평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보자.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중국의 국민을 잘 살게 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등소평이 시작한 흑묘백묘론의 자본주의 실험을 통해 중국의 경제발전이 현재 우리가 보는 것처럼 굴기할 수 있었다. 보수든 진보든 그들이 잡고자 하는 ‘쥐’는 같다. 다만 잡는 방법이 서로 다를 뿐이다. 그러니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쥐만 잘 잡으면 되지 보수면 어떻고 진보면 어떤가.

새는 한 쪽 날개만으로는 날 수 없다. 두 날개를 제대로 펼쳐야 하늘 높이 날아오를 수 있다. 사회도 보수든 진보든 한 쪽으로 치우쳐서는 건강한 발전을 할 수 없다. 추구하는 목표가 같은 만큼 보수와 진보의 두 관점이 새의 두 날개처럼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래야 살기 좋은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갈 수 있다. 사회는 호수가 아니고 흐르는 강물과 같다. 고인 물은 썩지만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사회에 보수와 진보라는 두 물줄기가 공존하게 되면, 소용돌이든 흐름이든 상호작용이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해 생동하는 활력이 바로 한 사회가 정체되거나 썩지 않는 묘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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