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태양도시 올래 ④

여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행복한 수다를 떨고 있었다. 대망새가 멘도루의 처소에 들자 미리은이 화사하게 웃었다. 멘도루도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연신 싱글벙글 웃었다. 장작을 타고 홧홧하게 타오르던 벌불이 숙지근해지자 방안이 훈훈하게 안정감을 찾았다. 이 때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드루봉의 눈보라를 삼켜 버렸다. “바가나치!”

배라기가 카낭과 함께 드루봉으로 다급하게 뛰어들어 왔다. 소리기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염탐전문부대원들이었다. 대망새가 급하게 멘도루의 처소를 빠져 나와 신료들의 회의장으로 갔다. “무슨 일인가?”

“노, 노고록의 북쪽으로 대단위의 무리가 몰려들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살던 북쪽 땅이 추워져서 남으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노고록의 북쪽은 이미 그 놈들이 점령해 바글바글합니다.”
바가나치의 질문에 배라기가 뻥뻥하게 대답했다. “놈들은 노고록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노고록 원주민들을 통해 노고록 남쪽은 물론 우리 팬주룽도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그 놈들의 무리가 눈덩이처럼 커져 팬주룽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배라기의 말은 노고록의 북쪽 변방보다 더 멀리 살고 있던 민족이 날씨가 추워져 노고록으로 이동을 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막강한 군사력으로 노고록의 북쪽주민들을 점령하고 더 따뜻한 팬주룽을 향해 진격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또 다른 전쟁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 그렇다면 그들과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말이군요!”

의자에 앉아있던 푸른돌이 잠수부처럼 솟구치며 말했다. 재기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대망새는 오만소리를 하는 신료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그들이 우리의 것을 강탈하고 우리의 생명을 해치려 한다면 단호하게 맞서 싸울 것입니다. 소리기 장군! 군사들을 집결시키고 전쟁준비를 서두르십시오. 올바바담! 무기를 점검해 주십시오. 호늘바담! 만조백관들에게 전쟁을 선포하십시오. 푸른돌 책사, 전략을 만들어 내시오! 그리고……”

대망새는 왠지 모를 분노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미리은은 몸소 지원부대를 이끌고 전쟁지원 준비를 서둘렀다. 재기는 올래와 팬주룽의 각지로 급한 파발을 띄워 지원을 하라고 일렀다. 소리기는 평소에 잘 훈련된 일당백의 군사들을 분연하게 일으켜 세웠다. 보병과 기병, 화살부대, 지원부대, 간호부대, 기습부대 등으로 이루어진 바가나치의 군대가 싸늘하고 파란 겨울 하늘아래 당당히 도열해 있었다.

팬주룽은 대망새가 국가를 이루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주변세상, 즉 노고록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보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노고록에서 바가나치의 군대를 이길 수 있는 부족은 없었다. 팬주룽 만한 대규모 도시도 없었고 이렇다 할 문명을 발달시킨 부족들도 없었다. 노고록에 정착한 군소부족들이 감히 팬주룽을 넘볼 수는 없었다. 팬주룽은 그러나 그들을 무력으로 발아래 꿀리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족한 물자를 전달하고 기술을 전수하는 등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가능한 지원해 주었다. 팬주룽은 노고록의 일부였지만 노고록을 지배하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북방의 이민족들이 노고록의 북쪽을 점령하고 팬주룽을 향해 남하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망새의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북방 이민족이 침략을 한다. 전혀 알 수 없는 적이다. 아뿔싸! 팬주룽과 노고록만 생각하다보니 다른 세상에 대한 관심을 두지 않았구나. 내가 과거에 댕글라 놈들을 상대로 꾸며낸 말이 현실로 드러나다니. 북쪽 세상은 얼마나 클까.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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