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한켠에 사무치는 그리움
의사로서 바라본 의료환경 등
143편의 시조와 수필에 엮어내

 

밤 열차 몸을 맡겨
어머니 가신 그날

대합실 그 잡답도
파도처럼 밀려가고

고독은 구만리 성에
나를 외로 세웁니다.

돌아와 눈감으니
어려오는 그 모습이

살아온 육십 역정
꿈결인 양 겹사온데

어머님 노여의 날은
꽃빛으로 열리소서.

- 어머님 다녀가신 뒤 中

의사였던 그가 문학에 발을 딛게 된 것이 벌써 햇수로 51년째다. 한 신문사에서 개최한 전국 의사 수필공모전에서부터다. 특히 그는 시조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공직생활을 하다 경북 김천에서 만난 향토 시조시인 백수(白水) 정완영 선생을 만난 뒤 그에게 시조를 전수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창간 동인지 ‘향목(香木)’을 출간했고 이후로도 시조집 ‘백목련’ 등을 통해 꾸준한 활동을 이어왔다. 시조만 써 온 건 아니다. 틈틈이 세상사 흐르며 겪은 인생의 이야기들도 수필로 축적해왔다. 그리고 이제서야 그간 써 온 작품들을 한 데 모아 정리해 책으로 엮어냈다.

시인이자 수필가, 서예문인화 작가로 다방면에서 뛰어난 작품 세계를 선보여 온 인산(仁山) 허인무 선생이 시문선집 ‘의창(醫窓)에 비친 모정’(도서출판 이든북)를 펴냈다. 책의 제목에서 어림짐작할 수 있겠으나 그는 의사다. 그러나 그의 시조만 보고 있노라면 의학 전문의라는 생각은 들지않고 오롯이 문인 그 자체의 느낌만 감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크게 느껴지는 감정은 그리움이다. 그것은 자연일 수도 있고 그의 구순(口脣) 생에서 여전히 가슴 한 켠에 깊숙이 자리하고 떠나지 못하고 있는 모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수필에선 다르다. 아픈 곳을 정면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의사만이 가진 예리함이 돋보이는 글이 다수 포진해있다. 의사였던 만큼 우리네 의료 환경에서 그가 느낀 아쉬움은 물론이고 삶을 지나오며 바라본 예스러움에 대한 기억, 우리네 사회가 가진 가슴 아픈 단면들을 수필로 구구절절하게, 깊고 뼈아프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제1장 백목련부터 2장 구슬 같은 섬 하나, 3장 의창에 비친 모성애로 구성된 책은 143편의 시조와 수필을 담았다. 허 작가는 “그간 써 둔 작품들을 매년 정리를 미루다가 겨우 올해 총정리를 해 책으로 묶어 내게 됐다”며 “수필은 비록 오래된 것들이나 당시 시대적 상황과 조류를 읽는데 참고해 주셨으면 좋겠고 시조 역시 정율로 쓰긴 했지만 자유시도 있는 만큼 독자들이 여러 각도에서 살펴봐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허 작가는 1934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광주고, 전남대와 경북대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73년부터는 대전에서 소아과 전문의를 지내면서 한국문인협회, 가람문학회, 대전문인총연합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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