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대 명예교수

신웅순 중부대 명예교수

오륜(五倫)은 유교사상에서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인 부자유친(父子有親)·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장유유서(長幼有序)·붕우유신(朋友有信)을 말한다. 맹자에 나오는 말로 아버지와 아들 간에는 친함이, 임금과 신하 간에는 의리가, 남편과 아내 간에는 구별이, 어른과 어린이 간에는 차례가, 친구와 친구 간에는 신의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오륜은 중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사회의 기본적 덕목으로 존중돼 왔으며, 지금도 우리 일상생활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사회 윤리 도덕이다. 오륜가는 조선시대의 가부장적인 가정 질서를 계도하거나 국가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의도로 지어진 노래다. 악장가사의 경기체가나 주세붕·송순·박선장·김상용·박인로의 시조, 그리고 황립과 유영무의 가사 등이 있다.

박선장의 ‘오륜가’는 그의 나이 58세인 1612년(광해군 3년)에 지어진 8수의 연시조다. 세상 인심이 날로 변해가는 것을 우려해 경계의 방편으로 지은, 동네의 어린 선비와 제자들을 교육하기 위한 작품이다. 오륜을 하나씩 차례대로 노래한 3수의 끝에 난(亂)을 덧붙여 오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작품의 서문과 함께 ‘수서집’에 전해진다.

촌(寸)마도 못한 푸리 봄 이슬 마잔 후에
닙 넙고 줄기 기러 밤나자로 부러낫다
이 은혜 하 망극하니 가풀 줄을 몰내라

처음 다섯 수는 부모의 은혜, 임금의 덕, 부부간의 공경, 형제간의 의미, 친구간의 신의를, 나머지 세 수은 오륜의 불변, 예의의 실천, 이웃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다.

위의 시조는 오륜가 첫 수로 부모의 은혜를 노래한 작품이다. 한치도 안 되는 풀이 봄 이슬 맞은 후에 잎은 넓고 줄기는 길어 밤낮으로 불어났고, 이 은혜가 너무 망극해 갚을 줄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오륜의 관념적 주제를 잎이나 줄기, 밤과 낮과 같은 사물로 은유해 형상화함으로서 여타의 설명적이며 직설적인 오륜가와는 사뭇 다른 점이 특징이다.

박선장(1555~1616)은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로 호는 수서(水西)다. 1605년(선조 38년) 50세의 늦은 나이에 증광별시에 급제해 성균관 전적이 됐고, 1611년에는 구만서당을 짓고 제자와의 강론과 성리학 학문 정진에 평생을 바쳤다.

이우즐 미이디 마라 이웃 미오면 갈듸업서
일향(一鄕)이 바리고 일국(一國)이 다바리리
백년도 못살 인생이 그러그러 엇뎨리

이웃간의 사랑을 읊은 맨 마지막 여덟째 수다. 이웃을 미워하지 마라. 이웃을 미워하면 갈 데가 없다. 고을이 날 버리면 나라도 날 버리리라. 백년도 못살 인생이 그럭저럭 삶이 어떠하겠느냐는 것이다. 하나도 그른 말이 없다. 지금에 와서도 이웃을 사랑하라는 전혀 낯설지 않은 성경 같은 구절이다.

이 오륜가는 윤리적 주제를 은유나 환유, 설의법을 적절히 구사해 문학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오륜가 계열의 중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요즈음 삼강오륜은 젊은이들에게는 케케묵은 단어가 됐다. 오륜을 말하는 것조차도 주저해지는 무서운 세상이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 해도 하나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다소 무거운 주제이지만 잠시 사색에 잠겨볼 만한 시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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