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박사(한국교육자선교회이사장)

조조(曹操)는 “내가 천하 사람을 버릴지언정 천하 사람이 나를 버리게 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조조는 삼국시대 군웅 중 한 사람으로 위(魏)나라를 세웠다. 중국 후한 말기의 정치가이자, 군인이며 시인이다. 자는 맹덕(孟德)이며 훗날 위가 건국된 이후 추증된 묘호는 태조(太祖)요, 시호는 무황제(武皇帝)다. 병법과 임기응변에 능해 난세의 간웅이라 불렸고 아들 조비가 황제에 오르면서 위나라 태조로 불렸다. 황건적의 난을 평정했다.

그의 인재 관리법을 알아보자.

①훌륭한 목수는 좋은 연장을 쓴다. 싸움을 일으키는 것도 사람이요, 끝내는 것도 사람이니 재능을 갖춘 인재가 옆에 있다면 어떤 싸움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승자들은 사람을 잘 부릴 줄 알았다.(용병술) 조조는 역사 연구를 통해 인재등용의 중요성을 명확하게 이해했으며 남다른 방법으로 인재를 발탁하고 중용했다. 천하대업에 뛰어든 조조는 마땅한 인물이 없어 스스로 계획하고 행동했다.

일단 세력을 잡으면 자신이 장군 자리에 올라 전군을 호령하고 자신의 부하들은 명령을 수행하는 장수로 쓰고자 했다. 그래서 천하의 인재들을 모아 자신의 지도력과 다양한 인재의 재능을 결합한 윈윈 전략을 세웠다. 사실상 조조가 짧은 시간에 원소를 격파하고 강동을 압박, 서량을 취해 대업을 이룬 핵심요인은 많은 인재들 덕분이었다. 사람 귀한 줄 알았던 조조는 깍듯이 인재들을 대접했고 인재들은 자신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 주는 조조에게 충성을 다짐하며 그의 휘하로 몰려들었다.

②세상이 곧 나의 스승이다. 능력만으로 사람을 등용했던 조조의 용병술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의 인재 등용술은 전통과 출신을 중시하던 당시 사회에 대한 하나의 도전이었다.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가 천하의 인재를 모은다는 소문이 퍼지자 무장한 인재들이 모여든 덕분에 그는 패전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품행이 바른 사람만이 실력을 갖춘 것은 아니다. 또 실력을 갖춘 사람만이 품행이 바른 것도 아니다.”라는 말로 인재 등용에 있어 도덕에만 얽매이지 않았다.

'아침을 알리지 못한 닭도 다시 한 번 울고 싶은 법'이란 속담을 인용하면서 품행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도 만회할 기회를 줬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를 중시하는 조조에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이유다.

③좋은 친구를 사귀어라. 무릇 성공은 자력쟁취가 가장 좋지만 남의 도움을 받는다면 금상첨화다. 탁월한 능력에 충성까지 얻는 것은 행운이다. 조조와 함께 의병을 일으킨 사람들은 조조와 혈연관계거나 동향 출신으로 그가 세력을 잡는 기반이 됐다.

④최고의 헤드헌터가 되자. 비범한 능력자를 얻는 것은 성공의 지름길이다. 조조는 천하인재 발굴에 탁월했다. 초야에 묻혀 있는 인재를 발굴했거나 스스로 찾아온 인재도 있었다. 심지어 사마의는 체포 작전을 써가면서까지 벼슬자리에 앉혔다. 그의 효성을 이용해 서서의 노모에게 가짜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⑤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큰일을 하려면 남보다 지혜로워야 한다. 지혜를 얻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는 미래에 대한 고민과 연구를 통해 얻는 것이고, 둘째는 현명한 자들에게 자문을 얻는 것이다.

조조는 그 자신의 비범한 재능 외에 당대 최고의 싱크탱크의 도움이 있었다. 정치적으로 조조의 싱크탱크는 숙적들을 제거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고 조조가 헌제를 허도로 모셔와 천자를 옆에 끼고 제후들을 호령할 수 있었던 것도 책사들의 지략 덕분이다.

⑥틀 밖으로 나와라. 사람들의 잘나고 못난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러나 그 사람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조조가 거느리던 책사들은 제갈량처럼 만사에 능하지는 않았지만 서로 머리를 맞대고 노력한 결과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의 천하통일은 책사들의 집단 지성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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