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승현 내포취재본부 기자

충남지역의 정치(政治)가 참으로 난감하다. 옥신각신하는 시비(是非)를 중재하지 못하고, 첨예한 이해(利害) 조정에는 어둡다. 대화와 타협은 온데간데 없고 죽기 살기 쟁투가 벌어진다. 제도권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공통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다 각기 다른 주장이 공고한 전선으로 대립하고 있어서다. 소통은 서로에게 ‘구호’로서만 유효하다.

1년 반가량 ‘충남도 도민 인권 보호·증진에 관한 조례’를 둘러싼 보혁(保革)의 갈등을 취재하면서 매번 답답함을 느꼈다. 진보를 대변하는 지역 시민사회단체의 ‘정언명제’ 화법은 인권에 관해선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동성애, 에이즈 등 자극적 언사를 동원하는 도내 보수색채 종교단체의 이른바 ‘인권 교조주의’는 숨이 막힌다. 고루하고 철저히 일방적이라는 점에서 양측은 묘하게 닮아있다. 이들이 앞다퉈 가져다쓰는 ‘도민’이라는 말속에 진짜 살아있는 도민은 없어 보인다. 아전인수를 위한 형이상학적 개념이다.

인권조례는 안희정 전 재선(再選)지사의 브랜드이자 충남 광역행정의 근간을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도민 인권 보호 및 증진의 가치가 행정의 울타리를 넘어 210만 도민들에게 안착했느냐 묻는다면 선뜻 대꾸하기 어렵다. 2012년 5월 충남도의회 전원 발의로 인권조례가 제정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대답은 집행 당사자인 충남도의 몫이다. 인권조례 존폐 논의가 한창이던 지난해부터 도의 대응이 선언적 수준에 머물렀다는 평가는 나온다. 10년 전 영화 제목처럼 누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인지 대다수 도민들은 알 길이 없다.

실체 없는 인권조례는 수사(修辭)에 무너져 결국 휴지조각이 됐다. 보수 종교단체와 맞닿은 자유한국당 의원들 일색이던 10대 의회 시절 얘기다. 의원 임기 불과 두 달을 남겨둔 지난 5월 인권조례 폐지에 이어 공포까지 일사분란하게 밀어붙였다.

그랬는데… 6월 지방선거를 통해 더불어민주당이 대거 약진하더니 11대 의회 임기 시작(7월) 뒤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은 8월 24일 ‘충남인권기본조례안’이 입법예고됐다. 직전 의회에서 인권조례 폐지를 이끈 한국당 의원 일부도 공동발의에 참여했다. 그야말로 어리둥절한 일이 벌어졌다. 인권기본조례안은 제306회 임시회기인 이달 7일 의회 행정자치위원회, 14일 본회의를 잇달아 통과했다. 조례안이 지방의회에서 의결되면 의장은 5일 내 지자체장에게 이송하고, 지자체장은 20일내 공포해야 한다는 지방자치법에 따라 늦어도 10월부터는 효력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5월 이후 중단된 인권행정은 곧 재개된다.

문제는 다시 ‘도돌이표’를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권행정 시행근거는 되살아났는데 기존 인권조례로 갈라진 보혁진영 어느 쪽도 환영하는 곳은 없고 오히려 전선을 재정비하는 모양새다. 진보는 인권기본조례가 퇴색했다고 폄하하고 보수는 동성애 깃발을 또 꺼내들며 ‘주민소환’ 운운한다. 인권기본조례안은 의회에서 재석의원 38명 중 30명(전원 민주당)이 찬성해 통과됐으나 반대표를 던진 7명은 한국당 6명에 정의당 1명이었다. 인권조례 폐지갈등에서 다수당만 달라졌을 뿐 양상은 비슷하다.

정치가 작동해야 할 지점이 여기에 있다. 인권기본조례의 큰 틀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대립은 격화한다. 지방행정의 법규범인 조례가 재차 흔들리면 지방자치는 신뢰를 의심 받고 전국적인 웃음꺼리로 전락한다. 의회와 집행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한 모든 주체가 이를 바라진 않을 것이다. 제조업의 쇠락과 실업, 농어촌지역 고령화,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과 가뭄, 고수온, 냉해 등으로 시름하는 210만 도민 앞에서 이제 충남의 정치 역량을 증명해야 할 때다.

문승현 기자 bear@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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