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덕원 충남경찰청 기획예산계 경감

하나둘 동네 사람들이 한곳으로 모인다. 동네 사람들이 모인 곳은 우리집 바로 옆 냇가다. 동네 사람 한두 명이 모이더니 어느새 온동네 사람들이 다 모였다. 냇가 옆에는 커다란 솥단지가 걸려 있었다.

솥단지에 불을 피우는 어른, 뭔지 바쁘게 왔다갔다 하는 어른. 이상하게 바쁘게 움직였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그 근처로 모여들었다. 무슨 큰일이 있겠나 싶었는데 장정 여러 명이 돼지를 메고 오는 것이었다. 그때는 명절이 되면 돼지를 잡는 것이 동네 전체 잔치였던 것이다. 비교적 젊은 아저씨들이 돼지를 잡고 해체를 주도했다. 내장은 손질을 하자마자 속을 채워 넣고 바로 솥단지에 넣고 끓였다. 지금 생각하니 그게 바로 순대였다. 솥단지 옆에 모여 있던 아이들도 분주하게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 날랐다. 순대 한 점이라도 얻어먹을 요량이었다. 명절이 되면 매번 반복되는 일이다 보니 아이들도 어른들도 어떤 순서로 일일 진행되는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랬다. 그때는 갓 잡은 돼지 내장은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 한쪽에서는 잡은 돼지를 저울에 달아 나누고 한쪽에서는 솥단지에 내장과 순대를 끓였다. 꼴깍꼴깍 침을 삼킨 지도 한참! 솥단지를 열자 침샘을 자극하는 냄새가 진동했다. 아저씨들은 한 손에는 소주를, 한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대 한 점을 들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왁자지껄했다. 아이들도 솥단지 옆에 옹기종기 모여 제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입가에는 벌써 군침이 흐르다 못해 넘쳐났다. 그 순대 한 점 얻어먹는 게 엄청난 호강이었다. 돼지 내장 중에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오줌보였다. 거기에 바람을 불어 넣으면 신기하게 축구공으로 변했다. 순대 맛을 본 아이들은 바람을 넣은 오줌보를 들고 동네 공터로 내달렸다. 월드컵에 버금가는 한바탕 축구 경기가 벌어졌다.

지금은 돼지고기도 음식도 흔하지만 그 땐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돼지 잡는 것이 잔치이자 큰 행사였다. 난 명절이 되어 돼지를 잡을 때면 울 엄마 손을 잡고 갔다. 엄마는 당신이 한 점 얻은 그 순대도 내 입에 넣어 주셨다. 그땐 그 순대가 왜 그리 맛있었는지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고향의 맛이자 추억이 깃든 음식이라 그럴 것이다. 아니 순대 한 점이라도 다 같이 나눠 먹던 동네 사람들의 정이 맛의 비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풍경도 그 맛도 찾아 볼 수 없다. 세월이 흐르고 사람도 떠나면서 이제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았다. 왁자지껄했던 명절 분위기는 이제 찾아 볼 수 없다. 가끔 마주하는 순댓국을 보면 그 때 그 시절이 생각난다. 하지만 그때 먹었던 그 맛은 아니다. 사람도 환경도 솥단지도 모두 다 변했으니까. 그때 그 시절, 그 사람들, 그 맛! 왁자지껄했던 그 풍경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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