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오백리길 9구간 마성산 정상에서 바라다 본 옥천 풍경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은 ‘향수’에서 자신의 고향을 네 번이나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향수가 발표됐던 시기는 일제강점기 시절로 일본에 의해 아름다움을 잃은 자신의 고향을, 혹은 일본에 의해 자주성을 잃은 자신의 조국을 그리워한다는 내용이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자신의 고향을 조국과 비교했을까. 그리고 그가 그렇게나 그리워하던, 그가 그렇게나 향수를 느꼈던 고향을 눈으로 담았을 땐 그가 느낀 예술적인 영감은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고 인정했다. 향수는 그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태어났다.

◆ 뜻밖의 손님이 이끌어주는 9구간 초반
9구간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전 구간의 마지막 구간이 다음 구간의 시작점이 아니다. 8구간의 종점은 충북 옥천 군북면 석호리 돌거리고개였지만 9구간의 시작은 진걸선착장이다. 진걸선착장을 내비게이션에서 찾을 수 없으므로 ‘충북 옥천군 군북면 석호리 80-2’로 찾으면 된다. 진걸선착장은 명칭답게 작은 배들이 오갈 수 있도록 넓은 대청호의 한복판에 위치해 도착점에 서면 우선 대청호의 푸른 모습을 제법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시작부터 가파르지 않은 임도의 오르막이 계속되기 때문에 발걸음은 무거워질 수 있겠지만 대청호를 바라볼 때마다 눈이 행복해져 힘들 줄 모르고 걷게 된다. 진걸선착장은 낚시꾼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어서 임도는 넓지 않음에도 차량 통행이 제법 있는 편이기에 굽은 길을 돌 때마다 차량을 조심해야 한다.

20분 정도 걸으면 9구간의 첫 번째 포인트인 청풍정이 나온다. 청풍정은 조선말기 갑신정변의 주인공이자 삼일천하의 대명사인 김옥균이 정변에서 실패하자 기생인 명월을 데리고 은둔생활을 하던 곳이다. 과거엔 대청호 대신 금강이 위치했기에 많은 고려시대 때부터 선비들이 자주 찾던 곳이다. 여기에선 새로운 손님을 만나볼 수 있다. 하얀색 큰 개다. 큰 개라곤 하지만 제법 생긴 면상을 보면 아직 1년이 채 되지 않은 청년기로 보인다. 털 관리도 깔끔한 편이어서 인근 펜션에서 자란 녀석인가 보다. 대청호를 찾는 이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는지 청풍정에서부터 계속 ‘같이 가요. 대청호오백리길’ 일행을 이끈다.

사진이라도 찍기 위해 쉼 없이 놀리던 발걸음을 멈추면 이 녀석은 잠시 뒤를 돌아본 뒤 해맑게 웃으며 돌아와 발 앞에서 배를 깐 뒤 재롱을 피운다. 대청호의 모습에도 넋을 잃기 쉽지만 이름 모를 짐승의 애교에도 눈길이 간다. ‘과연 집으로 혼자 돌아갈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하얀 녀석은 끊임없이 우리를 신경 쓰며 선도한다. 그리고 20분쯤 지났을까. 8구간의 종점인 돌거리삼거리가 나온다. 더 이상의 길을 모르는지, 아니면 주인에게 훈련이라도 받았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일행을 버리다시피 다시 돌아간다.

돌거리삼거리부턴 가을의 정취가 흠뻑 느껴진다. 길섶의 분홍과 하양의 코스모스, 그리고 추수가 지났지만 아직 다 자라지 않아 조금 더 고개를 숙이는 황금색 낱알, 이제 막 익어가는 주황의 감들이 가을의 빨강을 대청호 곳곳에 입힌다. 곧바로 37번 국도와 합류하지만 가을이 주는 단풍색의 매력은 계속된다. 그리고 그 매력에 심취해 향수를 따르는 나그네들은 어느덧 마성산에 들어선다.

마성산 정상에서...
대청호오백리길 9구간에서 마주친 뜻밖의 손님들
대청호, 그리고 정지용 생가

 

육영수 생가

◆ 고향에 대한 향수가 남을 수밖에 없었던…
마성산은 37번 국도 건너편 한 민박집 뒤로 이어지는 작은 산길에서 시작한다. 너무나 작은 산길이어서 집중하지 않고 걸으면 이정표를 놓칠 수 있다. 작은 입구를 지나면 서너 채의 농가가 띄엄띄엄 위치하며 길을 안내한다. 그리고 농가마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개의 무리들이 불협화음의 합창으로 자신을 소개하느라 바쁘다. 그리고 10여 분 정도 지나면 마성산(馬成山)이 시작된다. 사실 이 부근에 마성산은 세 곳이나 된다. 죽향리에 위치한 동마성산(335m)과 군서면에 위치한 서마성산(497m)이다. 그리고 고도가 딱 중간인 9구간의 마성산까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마성산은 이곳 토착민이 산에 올라 말의 조상에 제사 지냈기 때문에 이 같은 이름이 생겼다. 구체적으로 어떤 제사인지, 무엇을 목적으로 한지는 모르지만 ‘해동지도’와 ‘1872년 지방지도’에도 마성산이 표기된 걸 보면 과거부터 유명했던 명산인가보다. ‘한국지명총람’에는 마성산을 일자봉(一字峯)이라 하는데 이는 산 모양이 일(一)과 비슷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마성산의 본격적인 시작은 거대한 녹색의 오로라로 시작한다. 나무들이 워낙 울창해 하늘의 태양을 가린다. 이곳에서만큼은 가을의 정취를 찾아볼 수 없다. 그저 푸른 신록의 커튼이 머리 위를 감싼다. 초반엔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지 않다. 그리고 등장하는 게 며느리재다. 재(岾)는 고개를 뜻하므로 풀어서 이야기하면 며느리고개란 말이다. 며느리고개가 가장 유명한 곳은 강원 홍천이다.

이곳은 옛날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나귀 등에 짐을 싣고 고개를 넘는 것에서 이야기가 출발한다. 고개를 넘던 시아아버지와 며느리가 산마루턱에 이르렀을 때 시아버지의 짚신이 없었진 걸 알았다. 시아버지는 며느리만 남겨둔 채 짚신을 찾으러 오던 길을 되돌아갔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시아버지가 돌아와 보니 며느리도 없었다. 며느리는 도적떼에게 잡혀가거나 맹수에게 잡혀 먹혔다는 소문만 무성했다. 이 때문에 고개를 건너려면 제사를 지내고 가야한다는 슬픈 얘기다.

그러나 이곳의 며느리고개 유래는 분노를 느낀다. 이곳에서도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산을 건너고 있다는 얘기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갑자기 내린 소나기로 며느리의 옷이 다 젖었고 며느리의 살이 옷에 다 붙었다. 이를 본 시아버지가 욕정을 못 이겨 며느리에게 달려들었고 며느리는 울며 이를 피하다 낙사했다고 한다. 며느리재의 유래에 분노가 느껴지지만 사실 이곳이 너무 가팔라 울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점점 험해진다. 그러나 고도가 높아질수록, 커다란 신록의 커튼 뒤에 숨은 대청호의 모습이 조금씩 보일 때마다 전경이 좋을 것이란 기분 좋은 예감을 들게 한다.

가파른 산길은 갈수록 점점 험해지고 그리고 깎아지른 절벽을 방불케 하는 고개가 나온다. 과거 진나라의 함곡관을 공략하기 위한 여섯 국가의 연합인 합종군이 느꼈을 만한 감정이다. 직선으론 기껏해야 200m에 불과해보이지만 이곳을 정복하기 위해 무려 세 차례나 쉬어야 했다. 그러나 고진감래란 말처럼 오르막은 이곳을 마지막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정지용이 그토록 극찬하던, 자신의 고향인 옥천의 전경이 두 눈에 담기지도 않을 정도로 펼쳐진다. 그리고 느꼈다. 자신이 그렇게 향수(鄕愁)에 빠졌는지를. 그리고 이 광경을 본다면 향수란 시가 태어날 수밖에 없다고. 코스모스 사이를 뛰노는 풀벌레마저 이곳에선 그 경치에 취해 사람이 다가오는지도 모르리. 그리고 이곳을 찾은 나그네들 역시 풍경에 압도돼 모든 시선을 고정한 채 숨죽인 듯 선다. 그렇게 모든 것이 정적인 곳에서 하늘의 하얀 구름과 땅의 대청호만이 시간이 멈추지 않았음을 알린다. 그리고 이곳에서 드디어 정지용의 향수(香水)를 맡을 수 있다.

“춘(椿)나무 꽃 내뱉은 듯 붉게 타고 더딘 봄날 반은 기울어 물방아 시름없이 돌아간다. …(중략)… 아름아름 알어질 일도 몰라서 여윈 볼만 만지고 돌아오노니.”  

시간이 멈췄지만 시간이 멈추지 않은 곳의 끝자락엔 그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정지용의 생가가 나온다. 향수에 빠졌던 정지용, 그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모든 것이 이곳, 대청호오백리길 9구간에 있다. 그리고 정지용의 모든 것이었던 이곳은 이제 정지용을 향수한다.

글=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사진=노승환·김현호·정재인 기자
영상=정재인 기자 jji@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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