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숙 대전공고 교사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시도서관 독서캠프에 참가했다. 방학과 함께 시작된 장마, 시골집에서 시도서관에 가려면 30분 정도를 걸어 나가 시내버스를 타고 다시 20여 분, 일주일을 다녔는데 매일매일 지쳐갔다. 버스를 탈 때면 이미 무릎 아래로는 다 젖어 있었고 도서관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을 때면 내 모습이 초라해서 더 지쳤다. 도시 아이들의 산뜻한 모습과 나는 너무 달랐다. 그 때 무슨 책을 읽고 무슨 활동을 했는지 난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쓴이는 초등학교 1학년 처음으로 건널목을 세 개나 건너 혼자 도서관에 찾아간다. 불안감을 안고 도착한 도서관 열람실, 처음 마주친 것은 ‘고요’였다. 시장 근처에서 자고 나라며 다섯 식구가 셋방에 모여 살던 글쓴이는 생애 처음의 고요에 충격을 받는다. 곧 자신의 손길을 갈구하는 책에 이끌려 꺼내든 한 권, 도서관을 생의 안식처로 삼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책과 함께 성장하는 사람이 된다.
묘하게 화가 났다. 나의 도서관 첫 경험은 축축함과 박탈감으로 얼룩졌는데, 글쓴이는 성스런 침묵 속에서 생의 동반자를 만난 것이다. 자연 속에서 차별화된 감성을 키우며 자랐다고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새삼 글쓴이에게 질투가 나는 건 왜일까.
우리 학생들의 도서관 첫 경험은 어떨까. ‘첫 경험’이라는 말에 저희끼리 키득거리는 그들에게 눈빛 한 번 쏘아 주고 자신의 경험을 살려 글을 쓰게 했더니 나만의 경험이 모두의 경험이 되는 놀라운 서사가 펼쳐진다.
초등학생 때는 엄마를 따라 도서관에 가게 되는데 대부분 분위기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단다. 혈기왕성한 초등 남아에게는 너무 조용하고 재미없는 곳이라는 결론이다. 그래서 엄마 눈치 보며 학습만화에 본격적으로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다. 중학생 때는 친구들과 시험 기간에 주로 찾는다. 둘 이상 모인 중등 남아들에게는 더 재미있는 공간이 곁에 기다리고 있더란다. 찰나적으로 문제집만 보고 바로 PC방으로 향한다. 고등학생이 된 지금은 도서관을 ‘추억’한다. 그리고 덧붙여, 앞으로 책을 열심히 읽어야겠다는 다짐으로 아름답게 마무리.
담임하는 학급의 한 학생이 여름방학 후 좀 조용해졌나 싶더니 동네 도서관에서 스스로 책을 빌려왔다.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그래, OO아, 말 좀 덜 하고 제발 좀 까칠해져라~” 그 책이 지금 4주 째 연체다. 매우 ‘까칠한’ 독자라서 몇 장 읽지도 못했다. 그래서 재미있을 만한 소설 몇 권을 가져다 주었더니 곧잘 읽고 여전히 곧잘 떠든다.
언제 처음으로 가 보았으며 어떤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가 뭐 그리 중요할까. ‘도서관은 늘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내가 찾아가면, 도서관은 제 품을 열어 손 때 묻은 책 한 권씩 꺼내 주었지요.’라는 글쓴이의 말에 답이 있다. ‘책과 책 읽는 사람 곁’에 늘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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