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옥 사유담 협동조합 이사

 
김기옥 사유담 협동조합 이사

강화 통일전망대에 가면 강 건너 손 닿을듯 가까운 2.3㎞ 앞에 북한 땅이 보입니다. 지리시간에나 듣던 연백평야도 보입니다. 우연히 들렀다 머리가 쭈뼛하게 서는 것 같았습니다. 가깝다 못 해 망원경으로 멀리 북한 사람들이 보입니다. 군인이 아닌 우리같은 민간인입니다. 지게 짊어지고, 걸어가고, 손수레도 끌고 갑니다. 아이들이 쪼르르 뛰어다니다가 빨간 스카프를 매고 학교에도 가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한참을 망원경 속에 살았습니다. 각을 잘 맞추면 휴대폰으로도 북한이 찍히는 신기한 곳입니다.

한강 하류 그 좁은 물길이 남과 북을 나누는 유일한 북방한계선(NLL)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곳엔 군사분계선이 없습니다. 그 강 한가운데 남한으로부터 1.8㎞ 지점에 ‘유도’라는 섬이 보입니다. 김포시에 속한 섬이니 우리나라 땅입니다. 그러나 군사분계선에 있어서 사람이 살지는 않습니다.

저 조용한 섬에 1996년 8월 소 한마리가 떠 내려와 섬에 닿았습니다. 풀을 뜯어 먹는지 죽지도 않고 건강하게 잘있는 듯 싶더니 겨울이 되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슨 일인지 바짝 마르기 시작했습니다. 500㎏의 황소의 뼈가 드러났던 것입니다. 농사 짓던 김포 사람 눈에도, 보초 서던 군인들 눈에도 매일 찾아보는 게 일과가 되어 버렸습니다. “저걸 어쩌나. 빼짝 골아서 이 겨울 못 넘기겠네”

하루하루 쳐다보며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러자 드디어 유엔(UN)과 판문점 북측대표, 대한민국 해군, 김포시민 등 국제 공조로 구출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소 한마리를 두고 이런 위험한 작전을 수행하는 것에 대해 여기저기서 쓸모없는 감수성 낭비라 떠들어댔습니다. 여덟 명의 청룡부대 해병대와 한 명의 수의사가 세 대의 보트를 타고 벌인 작전은 8시간 만에 완료되었습니다. 멀리 북측에서 봤을 때 오해가 있을까 팔에 흰색 완장을 차고 들어섰던 죽음을 무릅쓴 작전이었다고 들었습니다.

1997년 1월 17일 구해낸 소는 지뢰를 밟아 발목에 고름이 줄줄 흐르고 있었고 그래서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극진한 치료를 받고 소는 다시 500㎏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랑을 받던 유도 황소는 이름도 비슷한 제주 우도 암소와 신접 살림을 차려 새끼를 낳았다네요. 그 첫째가 통일이, 둘째가 평화랍니다. 합쳐서 평화통일의 소는 지금도 건강합니다.

2006년 남한으로 내려온 탈북 소는 백 마리의 자손을 남기고 조용히 떠났다는 훈훈한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평화통일의 소는 우리보다 먼저 가족이 되어 서늘했던 남북관계에 훈훈한 가능성을 보여 주었답니다. 우리도 이제 가족이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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