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올해 상반기 자국의 내전을 피해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제주도에 입국했던 480여 명의 예멘 난민들의 난민인정심사가 마무리된다고 한다.

그런데 난민지위를 부여받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고, 인도적 차원에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미성년자, 임산부 등 23명만이 인도적 체류자로 인정됐다고 한다. 다행히 인도적 체류자로 인정된 사람들에게는 그동안 제주도에 한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했던 출도제한 조치가 풀려 제주도를 떠나 자신들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전쟁을 피해 살기 위해서 찾아온 나그네들에게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지만 그래도 23명만이라도 인도적 체류가 인정됐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2년 국제사회의 요구에 떠밀려 유엔난민협약에 가입했다. 그리고 2013년에는 난민법을 시행했지만 아직도 난민문제에는 소극적이거나 관심이 거의 없다. 법무부통계에 따르면 최초 난민신청을 받기 시작한 1994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 난민신청자 수는 3만 2733명이지만 그중 난민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은 고작 706명으로 전체 난민신청자의 2.1%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렇듯 우리 사회는 난민에 대해 배타적이고, 무관용적이며, 무관심했다.

그러다가 올해 상반기 제주에 예멘난민이 입국하면서 우리 사회가 난민문제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 결과를 보면 여전히 난민문제에 대해 소극적이고, 배타적이며, 무관용적인 모습이다. 사실 우리나라도 한 때는 난민을 발생시킨 국가였다.

일제 강점기나 한국전쟁 당시 많은 국민들이 난민이 되어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기도 했고,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한국전쟁 당시 약 5만여 명이 미국에 난민신청을 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난민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난민을 포용하고 보호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런데 이번 제주 예멘난민사건에서도 보듯이 난민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과 왜곡된 정보, 이슬람에 대한 오해로 인한 혐오로 난민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고 소극적이다. 난민이란 말 그대로 자국 내의 극심한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난을 피해 살 곳을 찾아 나선 사람들을 말한다.

단지 더 이상 자신의 가장 친숙한 모국의 환경에서 살 수 없어 뛰쳐나올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그들을 환대의 대상이 아닌 잠재적 범죄자, 테러집단으로 여기고 배척하는 것일까? 이는 이슬람은 테러집단이고, 타 종교에 배타적이고, 이슬람 남성들은 강간범으로 모는 이슬람 혐오가 우리 사회에 깊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슬람 혐오는 이슬람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막연한 공포는 아닐까?

이렇듯 우리 사회는 전형적인 난민 님비사회다. 난민구호를 말하지만 그들을 우리의 땅에 정착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로 보내려 한다. 이번 난민심사결과에서도 난민신청을 한 480여 명 중에 단 한 명도 난민 지위를 주지 않았다. 그들을 가짜난민으로 본 것이다.

이는 국제난민협약에 가입된 나라로서, 난민법이 존재하는 나라로서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책임을 회피하는 행위이다. 우리도 과거에 난민이었으며, 그 때 국제사회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15번째 무기 수출국이며 지금 내전으로 고통 받는 중동지역은 우리나라 무기수출시장규모에서 2위를 차지한다고 한다. 내전지역에 무기를 판 행위는 전쟁으로 발생한 난민에게 도의적 책임도 있는 것이다.

성서는 나그네를 환대하라고 가르친다. ‘자크 데리다’는 ‘환대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진정한 환대는 조건을 묻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타자의 영토에 유폐되어 자신의 존재를 부인당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일, 그들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일,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자리를 주는 일로 무차별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사회 안에 빼앗길 수 없는 자리/장소를 마련해 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라는 책에서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 또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것, 그가 편안하게 사람을 연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으로 그를 다시 한 번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서의 가르침대로 종교적 편견과 왜곡된 혐오를 넘어 나그네를 진정으로 환대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야 말로 좀 더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길이 아닐까? 샬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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