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풍수를 통해 국가의 도읍을 정했다. 고려의 개성과 조선의 한양이 대표적이다. 풍수지리는 신라 말기 도선대사로부터 시작돼 오랜 기간 ?수사에 의해 은밀히 전해오는 바에 의하면 한반도에 도읍이 될 명당이 3곳이 있으니 송악산과 북한산, 계룡산임을 지목했다. 또 송악산과 북한산은 왕조의 시대에 맞는 도읍이고, 계룡산은 왕조를 배격하는 지세로 인재를 등용하지 않는 등 외면을 당해왔다. 송악산과 북한산이 고려와 조선의 시대를 열었으나 국가의 주인이 백성인 계룡산시대가 오기를 모두가 갈망하고 있다.

전통지리학서인 조선시대 실학자인 이중환의 택리지에 의하면 사람이 살아 갈 터를 정할 때에는 네 가지를 살펴야 한다. 첫째는 지리(地理)가 좋아야 하고 둘째는 생리(生梨: 생산으로 먹거리)가 좋아야 하며, 셋째 인심(人心)이 좋아야 하고 넷째 산수(山水)가 좋아야 한다고 했다. 여기에서 첫째인 지리란 물의 흐름과 들의 모습, 산의 모양과 흙의 빛을 살피고, 물의 입구와 출구의 열림과 닫힘 등 풍수지리를 으뜸으로 인식하고 있다. 또 산수편에 산의 모양은 수려한 돌로 산봉우리를 이루고 물도 맑아야 하며 반드시 강과 바다가 서로 만나는 곳에 위치해야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데 나라 안에 네 곳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개성의 오관산(송악산)이요, 또 하나는 한양의 삼각산(북한산)이요, 다음은 진잠의 계룡산이요, 마지막은 문화의 구월산이 있다고 했다. 더불어 도선대사와 풍수사의 풍수적 관점에 따라 각 산의 산세와 수세에 대하여 논하고, 특징과 흠을 설명하고 있다.

계룡산에 대해서는 웅장하기가 오관산에 미치지 못하고 수려함은 삼각산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고 있으나 안쪽의 산과 물줄기가 멀고 깊어 정기(精氣)를 간직하고 있어 개성과 한양에는 없는 명당 안에 물이 넘쳐흘러서 큰 시내(두계천)가 됐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개성과 한양은 산세가 수세보다 강하다는 의미이며 계룡산의 산세는 위의 산들보다 산세가 약하지만 수세가 강해 산과 물인 음양의 균형이 더 좋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풍수에서 산은 정치를 의미하며 물은 경제를 뜻한다. 따라서 개성과 한양은 산세가 뛰어나 정치적으로는 강할 수 있는 중앙집권적 지세이나 물인 경제적 측면에서는 약함을 보인다. 이에 비해 계룡산은 산세인 정치는 약간 떨어지나 물인 경제력은 좋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황해도의 구월산의 수세 및 지리의 장점을 얘기하면서 한번은 당연히 도읍(수도)이 될 것이라 했다. 이상하게도 먼저 소개한 계룡산에 대한 도읍설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는 그 당시의 상황에서 풍수사에 의한 계룡산 지세가 왕조시대에 반역하는 반궁수(백성이 주인인 시대)로 계룡산시대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을 수 있거나 의도적으로 비하했을 수 있다. 따라서 현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계룡산의 지세를 유심히 살펴 새로운 미래 청사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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