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석 농협중앙회 대전지역본부장

튤립은 중앙아시아 텐산이 원산지이며 내한성 구근초로 가을에 심는 꽃이다. 오스만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을 함락시키면서 터키인들은 궁전을 세우고 튤립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16세기 중반에 유럽으로 건너온 튤립은 네달란드에서 매우 인기를 끌었다. 사실 네덜란드에 이 식물이 들어 온 지는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다.

튤립이 이처럼 사랑을 받은 이유는 이국적인 모습에 꽃봉오리는 왕관을 닮았고 잎사귀는 귀족의 검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당시 귀족과 대부호 상인들은 그림을 사는 일과 고급스러운 정원을 만드는 것이 부와 교양을 과시하는 상징물이었다. 19세기 스코틀랜드의 언론인 찰스 매케이(Charles Mackay)가 쓴 고전 ‘대중의 미망과 광기’에 당시 튤립이 얼마나 귀하고 비싼 것인지를 알 수 있다.

한 네덜란드 상인이 동방무역을 도운 선원을 집에 초대해 청어 식사를 대접하게 됐다. 그런데 상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선원은 청어에 양념을 더하기 위해 책상에 있던 양파(사실은 튤립)를 잘라 곁들여 먹었다. 상인은 선원을 고소했고 선원은 튤립을 양파로 생각해 먹은 죄로 몇 달간 징역을 살아야만 했다는 이야기다.

선원이 먹은 것은 ‘언제나 존엄한 이’란 뜻의 ‘셈페르 아우구스투스(영원한 황제)’ 튤립 뿌리였다. 당시 이 희귀한 튤립구근은 한 뿌리에 적어도 1000플로린이었다. 황소한마리가 120플로린이었고 돼지 한 마리가 30플로린이었다 하니 엄청난 가격이었던 것이다.

신비로운 동방에서 건너온 튤립이 처음에는 꽃 자체에 대한 인기와 희소성으로 가격이 점점 오르게 됐다. 1630년대 들어 비정상적으로 가격은 10배 이상 치솟으면서 단기간에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시장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로 귀족뿐만 아니라 농민, 심지어 굴뚝 청소부까지 투기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튤립광풍도 1637년에는 오를 때로 올라 더 이상 구매자가 없었다. 어음은 부도가 났으며 이미 많은 양의 튤립을 소유한 사람들은 투매를 시작했고 가격은 더욱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물건의 값이 지금까지 올라 앞으로도 오를 것이라는 기대로 그 물건을 사는 것을 투기라 한다. 이렇게 해서 너도나도 투기를 해서 값이 더욱 부풀려질 때 그 가격은 맥주 위로 거품이 넘쳐 실제보다 많아 보이는 현상을 ‘버블’이라고 한다.

튤립버블은 남해거품사건(잉글랜드)과 미시시피계획(프랑스)과 함께 근대 유럽의 3대 버블로 꼽히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항상 합리적인 소비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솟구치는 광풍이 오면 대중의 열기에 휘말려 언제 가는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이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튤립 가격이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투기에 뛰어드는 사람도 있다. 지금 가격이 오르니 내가 소유하고 있는 동안은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과한 것이다.

경제버블이 지나고 난 이후에는 가격이 폭락하면서 파산한 사람들이 속출한다. 문제는 소비가 줄다 보면 생산도 위축되는 경제의 악순환으로 빠져든다는 것이다. 1987년을 전후해 우리 사회에도 주식광풍이 불어온 적이 있었다. 남들 다하는 주식거래를 못하면 무언가 그 시대를 살아가는 트렌드에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증권거래시세를 들여다 보던 진풍경이 벌어졌다.

최근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의 부동산 가격이 용광로같이 불타올랐었다. 지난 미국판 서브프라임 부동산 버블은 기준금리를 낮추고 대출이 증가하면서 부동산 수요증가에 따른 버블이었다. 하지만 요즘 우리의 경우는 경제상황과는 관계없이 시중 유동자금이 넘쳐나 갈 곳 없는 유동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려 집값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전문가들은 공급물량이 적어져서 가격이 오른다고도 하고 과도한 투기 열기로 수요가 많아져서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는 견해도 있다.

튤립파동에서 보듯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부동산의 최고점이 어디인지는 신만이 알 것이다. 부동산버블의 주기가 있다 하는데 과거의 경험이 있지만 사실 그 주기가 맞는지도 정확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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