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은 대전대화초 교사

우리 학교에는 대단한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많다. 1학기에 열린 교내 다문화 이중언어 말하기 대회에 많은 아이들이 참가했다. 한국어는 물론이고, 베트남어, 필리핀어, 아랍어 등 모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영어만 20년을 공부해도 아직 외국인 앞에 서면 가슴부터 두근대는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학기 초에는 다문화 가정 학생 수를 조사하는데, 이 때 난감한 일이 많다. 분명히 다문화 가정인 것을 알고 있는데, 아니라고 하는 경우이다. 우리 학교는 다문화 가정이 많아서 학생들의 다문화 인식이 높은 편인데도 자녀가 다문화 가정임을 밝히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숨기려고 하는 학부모님이 많다. 다문화 가정의 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 가정’은 낙인이고 차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꾸 숨기고 감추려고 한다.

우리 특별학급에는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를 둔 승우가 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베트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초등학교 입학 시기가 되어 한국에 들어왔다. 특별학급에서 공부하면서 한국어를 자유롭게 말하고 쓸 수 있게 되었지만 최근 들어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듯 보였다. 그런 승우에게 베트남어를 할 줄 아는 지 물으면 항상 고개를 저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얼마 전 우리 특별학급에 입급한 투이에게 문제가 생겼다. 베트남에서 온 투이는 한국어를 한마디도 못하다보니 의사소통이 안 되어 무척 힘들어했다. 그 날도 이유 없이 수업을 거부하는 투이와 씨름을 하는 중이었다.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승우가 갑자기 유창한 베트남어로 투이에게 말을 건넸다. 물론 투이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이 장면을 보고 있던 나와 한국어 강사님은 입이 떡 벌어질만큼 놀랐다. 그동안 베트남어를 못 한다고 했던 승우가 이렇게 유창하게 말할 줄이야!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강점이 있다. 한국 아이들이 갖기 힘든 큰 강점, 바로 이중언어능력이다. 자라면서 한국어와 모어를 함께 듣다보니 큰 어려움 없이 이중언어를 습득한다. 특별학급 학생은 아니지만 우리 학교에 다니는 선아도 그런 경우이다. 선아의 어머니는 필리핀에서 오셨다. 선아는 한국에서 자랐지만 어머니께 필리핀어를 배워 올해 교육청에서 열린 이중언어 말하기 대회에 나가 은상을 받았다.

이렇게 다문화 가정은 숨기고 감추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는 다문화 가정만이 가진 이중언어능력라는 큰 강점이 있음을 알고 이를 잘 살려주어야 한다. 이중언어능력은 아이들이 자라서 사회에 나갔을 때 큰 강점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부모는 자녀들에게 어려서부터 다문화 가정만이 가진 장점을 알려주고 이중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한다. 이 아이들이 나중에 자라서 부모의 국가와 한국을 잇는 훌륭한 가교 역할을 해내는 인재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좀 더 당당하게 앞에 나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모님의 용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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