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필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태백산맥을 민족의 등뼈로 생각하고 소설 제목을 정한 조정래 작가가 산경표를 알았더라면 책의 제목은 백두대간 혹은 낙동정맥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일제 강점기의 강제 ‘창지개명(創地改名)’으로 지리교과서에서 배웠던 산맥의 개념은 1900년 초 일본 지질학자 고토분지로가 우리나라 땅을 답사하고 이 땅에서 백두대간의 자취를 사라지게 한 지질학에 바탕을 둔 ‘조선산악론’에 기초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산줄기와 산의 갈래, 산의 위치를 일목요연하게 계층적으로 기술한 조선시대 지리서인 산경표(山徑表)는 한반도의 산줄기를 1개의 대간(백두), 1개의 정간(장백) 그리고 13개의 정맥으로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산줄기만이 아닌 물줄기가 포함된 것이고 동식물 서식지 및 이동통로 등의 자연 환경적 가치와 지역주민의 삶의 터전이며 대표적인 산지축(山地軸)을 형성하고 있다.

백두대간에서 분지(分地)한 13개의 정맥은 남한에 8개의 정맥, 북한에 4개의 정맥, 휴전선을 관통하여 남과 북을 잇는 한북정맥을 포함하여 13개의 정맥이 있는데 길이는 남한 2152㎞, 북한 1432㎞를 합해 3584㎞의 마루금선을 가지고 있다. 이는 백두대간 1400㎞의 2.5배이고 정맥의 유역권 면적은 남한면적의 약 4.1%를 차지하고 있다.

산림청과 한국환경생태학회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정맥의 연간 산림환경가치는 2조 2000억 원으로 매년 증대되고 있고 남한 식물의 27%, 법정보호종 11%, 희귀식물 13%, 특산식물 21%가 분포하며, 조류 20%, 포유류 25%의 멸종위기종이 살고 있다. 또 문화재는 국보 41%, 보물 27%, 사적 43%를 차지해 우리나라 자연·인문환경을 대표하는 산줄기라고 할 수 있다.

올 여름은 ‘미폭’ 즉, 미세먼지와 폭염이 화두였는데 최근 국립산림과학원과 한국환경생태학회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시·군·구의 50%를 통과하는 정맥은 높고 낮은 산들로 연결돼 있고 이 산줄기들은 주야간으로 찬 공기를 발생시켜 도시의 폭염을 낮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분석됐다.

특히 독일의 슈투트가르트(Stuttgart) 시처럼 산의 찬 공기가 도시로 들어올 수 있도록 바람통로 숲을 잘 만든다면 도시를 시원하게 할 뿐만 아니라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법적·제도적 뒷받침의 미비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부족으로 많은 산줄기들은 도로가 관통하거나 채광·채석지, 골프장 등으로 훼손되고 있다. 특히 도심에서 인접한 지역들은 난개발이 이미 진행되고 있어 복원대책 마련은 물론 후속적인 훼손을 억제할 전략이 필요하다.

이러한 어려움에서도 충북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이 대표적인 산줄기인 한남금북정맥을 시민들과 함께 답사하면서 여론을 환기시키고 정맥의 중요성을 알리는 프로젝트가 진행된 바 있다.

산림청도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백두대간과 정맥을 보호하기 위한 지역과 함께하는 심포지엄을 충북도청에서 개최했으며 정맥 보전을 위한 지방정부와의 협력체계를 구축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정맥관리를 위해서는 지자체와 전문가, 지역환경단체, 언론, 지역주민이 동참하는 ‘가칭’ 보전관리지역협의체가 만들어져야 한다. 정부는 이를 뒷받침할 근거와 제도를 마련, 지원하는 민·관파트너십 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최근 남북 산림협력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북한도 기존의 일제 산맥체계에서 1996년 새 산맥체계를 수록한 ‘조선의 산줄기’에 ‘백두대(大)산줄기‘로 표현하면서 114개의 산줄기를 발표한 바 있어, 남북을 잇는 백두대간과 정맥을 상호 방문하여 현장자원조사를 연계한다면 남북관계에도 기여하고 통일을 위한 준비도 될 것이다. 정맥은 한반도의 핵심생태계이면서 국민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좋은 숲이 될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탄소저장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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