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기 중구발전협의회 자문위원

지구 온난화로 기후변화가 전 같이 일정하지 않지만 아직도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의 사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수백 년을 살아온 노목도 가을이 되면 겨울을 나기 위해 부지런히 나뭇잎을 떨궈낸다. 변함없이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오랫동안 수명을 연장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가을에 낙엽을 떨어뜨리지 않으면 이 나무는 겨울에 얼어 죽게 된다.

그러나 사람은 자연의 섭리나 사회적인 현상에 순응하지 않는다. 모두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수없이 다른 관점은 변화와 발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고 전기와 증기기관이 발명되면서 인류는 그야말로 비약적인 문명의 발전 속에 살아가고 있다. 이와 반대로 개인의 관점이 커져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히틀러의 나치즘과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기반으로 한 공산주의다. 히틀러는 나치당을 만들어 독일의 정권을 잡은 후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입게 했으며 북한은 공산주의를 표방하며 구소련을 등에 업고 6·25 전쟁을 일으켰다.

최근 ‘혹세무민’과 ‘지록위마’란 단어가 심심치 않게 눈에 들어온다. 혹세무민은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인다는 뜻으로 요즘에는 정확한 사실에 기반 하지 않고 개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가짜 뉴스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 되고 있다.

이런 가짜 뉴스들은 그릇된 관점으로 바라보는 개인의 시각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지록위마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는 뜻으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우겨 이를 강제로 믿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 편의 코미디 같은 이런 상황은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되풀이 되고 있다. 인류는 다양한 인종, 종교, 자연환경 속에 살아가며 수많은 관점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대다수는 비슷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그래서 나무 한그루 한그루가 모여 숲을 이루고 작은 시냇물이 모여 강이 되고 바다를 만들 듯이 거시적인 안목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하다. 나만의 이익, 나아가 소수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한다면 우리 사회는 늘 대립의 연장선상에 서게 된다.

최근 대전 중구 독립운동가의 거리 조성사업을 놓고 논란이 있다. 이 사업을 위한 절차나 계획 등의 문제를 논하기 전에 이 사업을 어떤 관점으로 보아야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적어도 필자의 관점에서 이 사업은 독립운동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고 이를 전승하자는 것이다. 물론 필자의 관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또 다른 관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역 상권과 원도심 활성화, 그리고 독립정신의 계승을 위해서 이 사업의 추진을 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게 중론이다.

깨끗한 물만 받아들인다면 결코 바다가 될 수 없다. 소나무가 느티나무를 자기와 다른 종이라고 해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숲을 이룰 수 없다. 독립운동가 거리 조성 사업을 놓고 우리는 획일적인 관점을 가질 수는 없지만 긍정적인 관점으로 볼 수는 있다. ‘내가 옳으니 당신이 틀렸다’는 이분법적 사고는 위험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시적인 관점이 아니라 거시적인 관점, 부정적인 관점이 아니라 긍정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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