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명예교수

어느 누구나 다 참 삶을 추구하려고 할 것이다. 상황이 지나고, 시대가 넘어간 뒤, 역할과 위치가 바뀌고, 처지가 달라진 때에도 ‘그래, 그것이 옳아’ 하고 끄덕일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일 것이다. 그러면서 누구나 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의 자리가 진리와 일치하면 좋겠다는 맘도 역시 가진다. 그런데 사람은 상황에 산다. 상황에 약하다. 그 상황을 벗어나서, 초월하여 살 수 있는 길이 매우 적다. 미안하고 안타깝게도 그 상황은 진리와 거리가 멀다. 상황은 상황일 뿐 진리는 아니다. 다만 그 상황에 따라 사는 삶이 진리와 일치하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될 때가 너무나 적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상황은 법으로, 제도로, 관습으로, 전통으로, 문화로, 이론으로, 철학으로, 종교로, 학문으로, 민족으로, 나라로, 계급으로, 정당으로, 여야관계로 우리에게 다가오면서 아주 강력하게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강요할 때가 많다. 그러니까 우리 일반 사람은 이런 상황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상황과는 전혀 상관없이 살 수가 없다. 때때로 상황이 주는 흐름과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은 언제나 힘든 고난의 삶을 살 때가 참으로 많다. 그런데 우리들의 위대한 스승들, 그러니까 진리의 삶을 살기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권장하는 스승들은 바로 그 상황으로부터 벗어나서 진리, 참에 맞추어 살라고 한다. 우리들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어느 것을 따라야 하는 것인가? 상황을 따를 것인가? 진리를 따를 것인가? 이 둘이 하나로 겹치기를 바라서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나는 지난 며칠 간, ‘한반도 평화만들기 은빛순례’에 함께했다. 3월 1일부터 시작하여 전국을 돌고 마지막 단계에 올랐을 때였다. 내가 해야 할 다른 일들과 겹쳐서 많은 곳을 함께하고 싶은 맘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결국 마지막 순례길만 함께하였다. 더 많은 곳을 순례했다면 매우 풍성한 어떤 감성을 가지게 되었을 것인데 그러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이번에는 문산, 파주, 강화도, 백령도를 함께 했다. 그곳에서 나는 무수히 많은 아픔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아픔들을 고스란히 평생의 삶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거기에는 분단과 전쟁과 갈등과 좌절과 상처와 아픔이 그대로 남아 살아 있는 곳이었다. 죽은 이를 기념하는 것도, 산 이를 맞이하는 것도 다 큰 아픔과 분노와 원한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물론 그것들 속에는 희망이 감추어져 있는 것을 볼 수도 있다. 분단과 전쟁의 결과로 영웅이 생기고 반역자가 생기면서, 그들을 찬양하고 비판하는 용어들이 슬프면서도 무섭고 살벌하게 새겨져 있는 것을 본다. 어떤 죽음도 찬양될 것은 없다. 어떤 죽음도 폄하될 것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이 심했던 지역에 새겨진 문구들에는 그러한 것들이 무수히 살아서 숨 쉰다. 그것들은 상황에서 태어난 것을 매우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상황은 언제나 변하고 달라지고 생겼다가 사라지고 또 다른 것이 생기곤 한다. 그러니까 상황은 영속하지 않는 흘러가는 것이면서 어떤 그림자들이다. 그 그림자가 너무 강력해서 우리는 그것이 마치 진리라고 믿게 돼 있다.

나는 가만히 비석이나 집이나 어떤 그림이나 조각들에 새겨진 문구들을 살펴보았다. 평화공원도 보았고, 전쟁기념비도 보았고, 일반인들이 ‘적군묘’라고 흔히 말하는 중국군과 북한군의 묘역도 보았고, 고향을 못내 그리워하는 망향탑도 보았다. 그 모양과 거기에 새겨진 것들을 보면서, 앞으로 남북이 평화롭고 자유롭게 오고갈 수 있게 됐을 때, 남쪽의 사람이 북으로 가보고, 북쪽의 사람이 남으로 와 보았을 때도 유효한 문구는 도대체 어떤 것들일까를 생각하여 보았다. 아마도 남북 간의 갈등이 고조되는 때였다면, 그 지역을 해설하는 사람들의 말투와 내용이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생과 평화의 분위기가 조금 살아나서 퍼지는 때이기 때문에 해설자들의 말도 상당히 많이 내용과 자세가 달라진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우리가 살아야 하는 자세는, 상황과는 거리가 먼, 진리의 입장에서 살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문제다. 요사이는 정치계에서나 사회에서 흔히 좌파, 우파, 진보, 보수, 자본주의, 공산주의 따위의 말들이 많이 논의된다. 그런데 우파를 재건한다거나 보수의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거나, 자본주의를 잘 살려야 한다는 말들은 공공연하게 나타나 주장되지만, 좌파를 강화하고 진보들이 총 단결해야 하며, 공산주의가 의미가 있는 것이니 열심히 공부해보자는 말들은 크게 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것도 지금 우리의 상황이다. 그만큼 진리의 입장에서 말을 하고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

나는 그러한 것을 극복하여 참 삶을 위하여 어떤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를 솔직히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되기를 바란다. 그러니까 좌파 상황, 우파 상황 따위의 부분상황이 아니라, 좌와 우가 함께 살고, 자유와 공산이 함께 살며, 진보와 보수가 서로 양심을 두고 상생하는 우리의 상황이 펼쳐지면 좋겠다. 시대가 지나고, 지역이 달라진 다음에도 옳다고 할 수 있는 생각을 하면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그 말은 상황을 넘는 참의 세계에 가까이 가서 살게 되기를 바라는 맘이다. 그러려면 내가 진리를 바라보고만 가야 할 것이다. 그만큼 내가 시류에 아부하지 않고, 권력과 제도와 시대의 흐름에 아첨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하겠다는 말이다. 글을 쓰든 말을 하든 상황이 두려워서 숨기거나 돌리지 않고 곧바로 할 수 있기를 바라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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