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박사(한국교육자선교회이사장)

김형태 박사(한국교육자선교회이사장)

우리나라 시가 문학 갈래 중 가장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 것이 시조다. 이 장르는 고려 후기에 등장했다. 고려는 광종의 과거제도 이후 새롭게 등장한 신흥사대부들이 사회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들이 창작한 대표적인 문학형태가 경기체가다. 그러나 경기체가만으로는 사상이나 감정을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어 고려 후기, 다양한 사회적 변화들이 생겨났다. 과거제도는 문벌귀족들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벼슬길에 나갈 기회가 됐는데 이 ?문에 시를 잘 짓고 유교경전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사회적 능력이 됐다. 시조는 바로 이런 사회적 요구에 따라 등장한 문학형태였다. 시조에는 평시조와 엇시조 및 사설시조가 있다. 그러나 평시조가 대표 시조다.

평시조는 3행(초장, 중장, 종장)으로 이뤄졌다. 하나의 장은 두 구절로 나눠지기에 3행 6구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전체 글자수는 45자 내외이며 한 장은 4음보로 돼있다. 시조는 원래 ‘단가(짧은 노래)’로 불렸는데 조선 영조 때 이세춘이 이를 시절가조(時節歌調)라 불렀고 그것을 줄여 시조(時調)로 불리게 됐다.

이렇게 1장, 4음보, 3행시(45자) 한두 편을 남긴 것으로써 600년을 지나 현대인들과 역사적 만남과 교류를 이루는 것을 보면 문학작품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가 있는가를 새로이 이해하게 된다. 만약 그들 시조작가들이 재산을 많이 남겼다면 60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고 존경하게 되겠는가? 이제 고려 말기의 시조 몇 편을 감상해 보도록 하자.

①“춘산에 눈 녹인 바람 잠깐 불고 간 데 없다/잠시만 빌려다가 머리 위에 불게 하고자/귀밑의 해 묵은 서리를 녹여 볼까 하노라”(우탁/고려 충혜왕(재위 1339-1344) 때 늙어가는 자신을 한탄한 노래이다.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청춘을 아쉬워하는 마음이다.)

②“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일 때/일지춘심을 자규가 알랴마는/다정도 병인 것 같아 잠 못 들어 하노라”(이조년/고려 충숙왕(재위 1332-1339) 때 지은 것으로 하얀 배꽃, 달빛, 은하수, 자규 등의 사물들이 어울려 봄밤의 슬프고 쓸쓸한 마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시조다.

③“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뇨/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까지 누리리라”(이방원/고려 공양왕(재위 1389-1392) 때 지은 ‘하여가’로 정몽주를 설득하기 위해 지은 시다. 개성에 있는 만수산의 칡넝쿨이 서로 얽혀 살 듯 조선건국에 함께 참여하자는 정치동맹 제안시다.)

④“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정몽주/고려 공양왕(재위 1389-1392) 때 이방원의 ‘하여가’에 대한 거절을 이 ‘단심가’로 표현한 것이다.

고려 왕조에 대한 자신의 충절을 일편단심이란 말로 담아내고 있다. 최근 정치인들이 지조 없이 탈당, 입당, 복당을 일삼는데 정몽주 같은 충신을 본받으라고 권고하고 싶다. 대쪽 같은 지조에 양귀비꽃보다 진한 충절이 있어야 후대까지 존경받는 정치인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⑤“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성난 까마귀 흰 빛을 시샘하니/청강에 깨끗이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정몽주 어머니/고려 공양왕 때 쓴 시조로. 역시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다.

이율곡의 어머니 사임당 신 씨,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 웨슬리의 어머니 수잔나, 링컨의 어머니 낸시, 안중근의 어머니 조 마리아는 한결같이 자식의 생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어머니들이다. 소인배들이 뒤엉켜 다투는 곳에 백로 같은 아들이 한 데 끼어 더럽혀질 것을 걱정하는 모정을 발견한다.)

⑥“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험하구나/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석양에 홀로 서 있어 갈 곳 몰라 하노라”(이색이 고려 말기에 지은 것이다. 고려의 신하로 조선 건국에 끝까지 반대해 자신의 지조를 굽히지 않았다. 이색의 의지를 담은 시조로 망해가는 고려 왕조를 생각하며 안타까워하는 심정을 구름이 험한 골짜기와 석양에 갈 곳 몰라 하는 자신으로 표현하고 있다. 공직자 윤리지침으로 이런 시조를 암송케 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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