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지

그 분 약속하셨네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약속의 말씀 믿는 사람
그 말씀 안에서 축복을 누리고

약속의 말씀 의심한 사람
그 말씀, 하나의 문자에 불과하네

마음 가난한 사람
의지할 곳 없어
말씀만 소망하고 기다리는데

지식과 경험으로 무장한 사람
약속의 말씀, 합리(合理)로 재단하네

그 분 오심을 믿고는 싶으나
의심의 합리가 이해(理解)를 가로막네

과거의 현재가 의심을 낳고
미래의 현재로 불안이 증폭되네

약속의 말씀, 믿음으로 의지하여
미래의 현재를 지금 편히 누리는데

약속의 말씀, 부도날까 의심하고
교회를 찾지 않네, 예수를 멀리하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나오는 맺을 약(約)자는 뜻을 나타내는 실사(?) 부와 음을 나타내는 작(勺)자를 합해 ‘꼭 묶는다’라는 의미의 형성문자다. 구약성경은 계약(베리스)이라는 말을 285회 사용한다. 헤브라이어 ‘베리스’는 일정한 약속 하에 개인 또는 집단이 상호 구속관계에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로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계약을 맺는다. 이로써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계약관계가 성립했다. 이 계약으로 신과 인간의 인격적·윤리적인 관계가 확립되고, 그 후 이스라엘 역사는 인간의 계약위반죄와 그에 대한 심판, 그리고 계약의 재건과 갱신이라는 방법으로 전개된다.

신약성경에서는 계약을 ‘유언’을 뜻하는 그리스어 ‘디아테케’라는 말로 나타내는데, 이는 구약의 ‘베리스’의 역어(譯語)이며 구약의 사상을 계승한 것이다. 원죄(原罪) 때문에 인간이 구약(오래된 계약)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자,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매닮으로써 그 죄를 속죄하게 하는 새로운 계약(신약)을 맺게 된다.

계약사상은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 인격적·윤리적 질을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오래된 계약’과 ‘새로운 계약’이라는 역사적 시야를 부여하고, ‘구세사’라는 세계사적 전망을 가진 신학사상으로 계승된다.

고대 그리스도교 세계에서는 이레네오가 구세사 신학을 수립하고, 근대에는 17세기 영국 및 미국의 퓨리탄들이나 유럽 대륙의 개혁파 신학자 코체유스가 ‘계약신학’에 의해 계약 개념을 새로이 전개했다. 코체유스 신학의 영향은 19세기 독일의 역사철학(헤겔, 마르크스 등)의 발생 배경이 됐다.

한편 영국, 아메리카 퓨리탄의 계약신학은 중세의 봉건적 충성계약사상에 대항해 근대 초기의 절대주의 체제를 극복하는 사회계약이나 인권 등의 혁명적 이념을 낳았다.

이는 홉스나 로크 계약사상의 배경이기도 하다. 퓨리탄적 사회계약사상은 ‘메이플라워 콤팩트’에 의한 미국 건국에 영향을 끼쳤다. 미국 국가통합의 기본이념은 페데랄(Federal) 유니언이다. 그 페데랄은 라틴어의 ‘페데두스(Foedus)’, 즉 계약에서 온 것이다. 퓨리탄의 계약신학에서 재현된 성경적 계약 개념이 미국이란 국가 성립의 기본이념이라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믿음은 약속어음과 같다. 약속어음은 발행인이 소지인에게 일정한 금액을 미래의 특정한 시기와 장소에서 무조건 지급할 것을 약속하는 어음으로, 제3자에게 지급을 위탁하는 환어음과 달리 지급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환어음이 발행인-지급인-수취인 간의 3자 계약이라면, 약속어음은 발행인-소지인 간 2인 계약이며 발행 초부터 발행인이 어음의 절대적 지급의무를 진다. 하나님이 발행한 말씀의 약속어음을 믿는 크리스천들은 말씀 안에 담긴 미래의 축복을 담보로 현실을 긍정적 시각으로 바라보며 최선을 다한다.

의지할 만한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불안해 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항상 불안하다. 과거는 ‘이미 없는’ 것이며, 미래는 ‘아직 없는’ 것이다. ‘이미 없는’ 것과 ‘아직 없는’ 것의 접점인 ‘현재’를 어떻게 살 것인가는 전적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불안한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행복한 삶을 살 것인가?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심각하게 자문해 보는 새벽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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