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근 대덕대학교 자동차공학과 교수(산학협력단장)

작년 겨울 서울 일산대교에서 14중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노면이 얼어붙어 제동거리가 길어진 것이 원인으로 알려졌다. 주변에 강이 있는 지역은 눈이나 비가 오는 날씨가 아니어도 새벽에는 타 지역보다 서리가 많이 내리게 되고, 특히 다리 위는 지열이 전달되지 않는다. 또 위아래로 부는 바람 때문에 일반도로보다 기온이 몇 도 더 낮아진다. 결국 일반도로의 경우, 아침에 해가 뜨면 녹아 없어지는 서리가 다리 위에선 몇 시간 더 유지될 수 있다는 얘기다. 서리가 내리면 노면의 마찰계수가 빙판길과 비슷한 정도로 떨어지면서 제동거리가 배 이상 길어진다. 보통 시속 100㎞ 주행 시 젖은 노면의 제동거리는 50m 내외이며 타이어에 따라 44~56m 정도다. 문제는 테스트 드라이버가 전력을 다해 브레이크를 밟았을 경우가 이 정도이고 앞차의 제동상황을 보면서 브레이크를 살짝 밟았다가 위험하다 싶을 경우 꽉 밟는다고 가정하면 70m 이상 길어질 수 있다. 그래서 고속도로에서 안전거리를 100m 이상으로 하라는 것이다. 물론 앞차도 어차피 미끄러진다고 주장하며 안전거리를 30~40m 미만으로 유지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이유는 화물차에서 낙하물이 생길 수 있고 앞차가 그 앞차와 추돌하면서 바로 정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은 살짝 결빙된 도로에서 안전거리를 평소처럼 유지하면 연쇄추돌사고 발생 위험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사고가 난 지역에 블랙아이스가 있었다는 목격담이 있다. 겨울철에 눈이나 비가 내릴 경우 낮동안 다소 포근한 기온에 눈이 녹은 후 아스팔트 틈새로 스며들 수 있다. 밤에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면 녹았던 물기가 도로의 기름, 먼지 등과 섞여 까맣게 얼게 된다. 까맣고 반짝반짝 하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특성으로 인해 블랙아이스라 부른다. 물론 블랙아이스는 수십 미터 규모의 큰 범위로 얼어 있지는 않고 살짝살짝 미끄러지지만 운전자를 놀라게 하고 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블랙아이스는 가까이 다가가면 오히려 눈에 안 띄는 경우가 많고 다소 거리가 있을 때 TV 모니터처럼 검게 반짝이는 것이 보인다. 야간에는 반대차선의 라이트 불빛이 반사되는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만약 운전 중에 블랙아이스가 발견되면 미리 차량 속도를 낮추고 앞차와의 거리를 충분히 유지한 후 가능한 브레이크나 핸들 조작 없이 지나가는 게 안전하다.

겨울철 차량 운전은 늘 조심스럽다. 그런데 다중 추돌사고는 눈이 잔뜩 쌓여 있는 한겨울보다 지금처럼 막 겨울이 시작되거나 이른 봄철과 같은 환절기의 새벽에 많이 발생한다. 도로가 얼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안 하기 때문이다. 특히 북향으로 늘 그늘져있는 도로의 경우 결빙이 빨리 오고 오래 유지된다. 이럴 경우 제동거리는 최소 2배에서 최대 10배 가까이 늘어난다. 그래서 필자는 장거리운전을 하면서 산악지역으로 접어들거나 그늘진 산모퉁이 도로를 이용할 경우 전후좌우를 살핀 후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브레이크를 살짝 밟아 노면 상태를 미리 체크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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