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붕준 대전과학기술대 신문방송주간 교수
전 대전MBC 보도국장/ 뉴스앵커

매년 반복되는 말이지만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요즘 시내 곳곳에서는 송년회(送年會)가 한창이다. 40여 년 전 방송국 입사 초기에는 ‘망년회(忘年會)'라는 명칭으로 모임을 했다. 자주 만나지 못했던 친구, 선배, 후배 지인들이 회포를 푼다. 동창회나 공적 모임의 송년회는 푸짐한 선물을 준비하기도 한다. 자주 보는 사람들도 연말이면 '껀수'를 만들어 뭉친다. ‘한 해 가기 전에 밥이나 한 번 할까요?’하면서 영혼이 없는 말을 건네는 것도 요즘이다. 송년회에서는 ‘내년 기해년을 위해!’라고 외치면서 술잔을 비운다. 이렇듯 연말이면 직장인들은 망년회 술자리에 찌들어(?) ‘몸 망치는 망년회’ 라고 비꼬기도 한다. 비주류(술을 잘 먹지 못하는 사람 지칭)들은 어떻게든 술을 안 먹으려고 머리를 쓴다. 이맘 때쯤이면 올 한해 힘들고 즐거웠던 일을 떠올리며 '또 한 살 먹는구나, 내년에는 좋은 일이 생겼으면!’ 하고 기원하기도 한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각종 송년 모임에 참석한다. 어떤 모임은 호텔에서, 식당에서 영화만 보고 커피를 마시며 담소하며 한 해를 보내기도 한다.

그런데 '이 송년회가 과연 누굴 위해 하는 것이냐?'는 부정적인 의견도 적지 않다. 의례적이고 형식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호소하기도 한다. 개개인의 성격도 무시 못하고, 퇴근 후 가정일까지 하는 여성 직장맘이라면 더욱 그렇다. 심지어 송년회 자리에서 언쟁을 벌이면서 싸움으로 번지는 사례도 있다. 그래서 연말 송년회가 두렵다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심심해도 직장동료나 상사는 절대 사양이란다. 개념있는 상사가 되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송년회 2차를 안 하면 되니까! 그러나 이를 뿌리치고 돌아서면 씁쓸한 것도 사실이다. 세상이 각박하게 느껴져 간다. 송년회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우울감이 불쑥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지나치게 기분 전환을 하면 뇌가 피로해져 더 큰 우울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지금은 사람 만나는 것도 귀찮다고 하면, 나중에는 전화 한 통 오지 않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일은 많은데 모임에서 참석하라고 총무가 자꾸 전화하면 짜증나고 성가실 때도 있다. 어떤 핑계를 대고 나가지 않을까, 친척이 상 당했다고 할까? 아이가 수술했다고 할까? 친척 결혼식이 모임 시간에 있다고 할까, 지방에 계신(오라고 할까봐) 부모님이 편찮다고 할까? 별 생각을 다 한다. 한 회사에서는 ‘선배님 꼭 가야하나요? 빠지면 불이익 있나요?‘라고 묻는 직원도 있다고 한다. 술 먹는 것도 싫고 장기자랑도 싫고…. 돌아가면서 건배사 하라는 것도 싫고…. 송년회때 노래를 부르라고 해서 고민하다 감기에 걸리기로 마음먹고 이 겨울에 속옷만 입고 아파트 베란다에서 덜덜 떠는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갹출하는 송년모임 회비도 걱정이다. 공짜라고? 이것도 싫다는 직원도 있다. 영화로 송년회를 대체하지만, 그냥 일찍 퇴근시켜 주는 것이 최고 상사라고 한다.

세상이 각박해지고 있다. 그러나 만나는 것을 정말 싫어하면 고독해질 수 있다고 한다. 앞으로 10년 안에 만나자는 전화가 전혀 오지 않을 수 있다는 통계는 우리를 서글프게 한다. 연말이 돼도 전화 한 통이 없다? 점심이나 저녁을 먹자고 하는 사람이 없다? 생각조차 하기 싫은 상황이 현실이 된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이 급격히 줄고 있다. 지난 2007년, 여가시간을 친구와 함께 지내는 사람이 34.5%, 지금은 8,3%로 급격히 줄었다. 해마다 송년 모임도 줄어 식당 영업도 잘 안 된다고 한다. 송년회를 주관하는 사람도 즐겁지 않다는 송년회라면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누구를 위한 송년회? 바니타스(Vanitas), 라틴어로 인생무상이라는 뜻이다. 한 해의 아쉬움과 서운함을 정리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송년회는 못 하더라도 기해년 새해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과 건강한 교류를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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