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둔산초 박준수 교사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은
매일 콩나물에 물을
주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헛수고인 줄 만 알았는데
저렇게 잘 자라고 있어요.
모두 다 흘러버린 줄 알았는데
그대로 매일 매일 거르지 않고 물을 주면
콩나물처럼 무럭무럭 자라요.

-이어령 ‘천 년을 만드는 엄마’ 中에서

아이를 키우고 교육하는 것을 콩나물을 기르는 일에 비유한 이어령 박사는 어찌 보면 가장 단순한 진리의 물음인 성숙의 과정을 우리에게 되묻는 것 같다. 흔히들 교육현장에서 혹은 가정에서 몇 번의 가르침과 지도로 아이들을 판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만큼 했는데도 그걸 못 알아듣겠어.’ 더디 보이는 변화의 모습을 기다리지 못하거나 그간의 노력이 헛일인 것처럼 책망하며 이런 말을 내뱉곤 한다. 무엇이 됐든 알맞은 빛깔과 탐스러운 향을 내기 위해서는 저마다의 기다림과 성숙의 시간이 필요한데도 말이다. 더불어 성숙의 과정은 쉬이 그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선뜻 비치지 않는 결과에 실망하며 아이들에게 물주기의 행위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어본다.

‘시나브로’라는 말이 있다.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말이다. 우리가 아이를 기르고 가르칠 때 흔히 범하기 쉬운 잘못이 바로 이 시나브로라는 말을 되짚지 못하는 데 있는 듯하다. 아이를 기르고 가르치는 부모와 교사는 콩나물을 기르듯 그 가르침의 깊이를 기다려야 할 때가 더 많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나오지 않는 결과만을 바라보며 과정에서 얻게 되는 기쁨을 간과할 때가 더욱 많은 것 같다.

콩나물을 기르기 위해 조롱박으로 물을 끼얹는 단순한 행위를 무한 되풀이하듯 아이들을 가르치고 이끄는 일도 우리의 많은 삶을 투영시키는 반복행위가 아닌가 한다. 그러한 반복 속에서 아이들은 꽃눈이 피고 새싹이 돋듯 제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다.

반면 어떤 이들은 정성이 지나쳐 틈이 날 때마다 물을 주고, 보자기를 들춰보며 성급하게 콩나물을 키우려는 이들도 있다. 아침저녁 새순이 돋아나길 고대하지만 돌아오는 건 다 뭉그러진 콩 한 되 박뿐이다. 허투루 했던 물주기가 이번엔 너무 지나쳐 문제가 된 것이다.

아이들도 제 나이 때와 시기에 알맞은 정성과 관심이 필요한 것이다. 너무 지나친 열정은 아이들이 감내하기에 퍽 힘이 든다. 시간의 순리에 맞게 알맞은 양의 양분을 섭취했을 때 바로 더 풍성하고 멋진 꿈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이를 기르는 부모와 교사는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듯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 헛손질이라 쉽게 포기하지도 말고 지나친 열정으로 성숙하여 가는 과정을 헤집지도 않게 말이다.

올 한해 끝을 바라보는 나는 어떤 물주기를 했는지 되돌아본다. 너무 많은 물주기로 튼실한 뿌리가 자라는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조급해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이런 마음으로 다가올 3월의 첫날을 다시 기다린다. 아이들 눈높이에서 함께하기를 그리고 아이들이 콩나물처럼 무럭무럭 자라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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