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숙 대전공고 교사

 

 

읽어서 쓰고 싶어지는 건지, 쓰고 싶어 읽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쓰는 일은 참 고되고 멋있다. ‘번뇌는 별빛이라.’ 앞서 쓴 문장을 딛고 나아가다 보면, 지나온 길과 걸음걸이를 돌아보면, 더 잘 걷고 싶고 길을 더 닦고 싶어지는 이유는 뭘까. ‘글쓰기는 성찰수업.’

매월 혼자 하는 성찰수업, 교단일기 글쓰기를 내년에도 덥석 하겠다고 해놓고 읽기와 쓰기의 아름다운 합체를 위해 오늘 수업을 시작한다.

교사 독서모임 ‘트라이앵글’(1월), 학생 독서동아리 ‘호모 부커스’(2월). 잔뜩 멋부린 영어이름이라니. 원하는 의미를 다 담은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최선을 다했는지는 유감스럽다.

교사가 먼저 함께 읽기의 힘을 발휘해보자며, 의욕은 하늘을 찔러 보지도 못하고 돌아온 아쉬움이 됐다. 책을 고르고 고르는 데도 어렵다. 읽으면 다 좋을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동아리 아이들에게는 게으른 교사였다. 세계 단편소설 읽으며 활동지만 작성하게 했으니 제대로 된 토론도 독서활동 소식지 발간도 사제동행 독서활동도 모두 어디로 간 걸까. 그래도 머리 위 ‘북극성’(4월)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날 기다려 주겠지.

‘책을 읽는 이유’(4월)로 우아한 고독을 누릴 수 있다며 책 읽기를 권했으나 치열한 고독이었어야 했다. 전쟁 치르듯 읽었어야 했다. 그래야 읽고 쓰기의 고통으로 성장하는 ‘예술가의 모임’(5월)이 된다. ‘공개수업’(6월)도 하고 ‘독서감상문’(7월)도 제법 받았다. 하지만 수업시간 나의 구애는 여전하다. 끝내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게 짝사랑이다. 방법을 바꿔야겠다.

‘책쓰기교육 연수’(8월)를 받고 나를 관찰하고 변화를 기록하는 일로 글쓰기를 실천하려면 글쓰기는 여전히 모두의 숙제다. 이 숙제를 ‘제가 알아서 할게요’(9월)라며 제대로 하지 않는 나와 학생들은 모두 나머지 공부. ‘선생님부터 잘할게’로 바꿔 말하자.

‘도서관 찾아가는 날’(10월)은 나 혼자만의 날들이었고 학생들과 함께하는 날로 만들지 못했다. 학교가 책과 책 읽는 사람 곁이 되려면 우리 학생들이 있어야 할 곳은 바로 도서관. 알고라도 있으면 변화는 시작된다는데 여전히 우리는 ‘시간 도둑’(11월)에게 버젓이 두 눈 뜨고 무형의 재산을 빼앗기고 있다.

스마트폰도 유흥도 줄이기가 어려우니, 그래도 도둑은 되지 않았다고, 될 수 없다고 위안이라도 삼아야 하나. 그래도 내가 걸은 만큼만 내 인생이라는 각오를 잊지 말자며 ‘빌에게’(12월) 편지를 썼다. 독후감 대회에 응모한 학생 2명은 수상을 했고 빌로부터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느리더라도 계속 걸을 이유다. 끝내고 싶지 않은 혼자 하는 성찰수업, 새해에는 함께 쓰는 데까지 거듭날 모두의 수업이 되길 바라며 오늘 수업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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