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몸으로 맞서는 평범한 사람들
예전만 못한 온정에 힘겨워도
“먹고 살길 막막해도 꿋꿋하게”

20일 대전 서구 월평동 인근에서 김 모 씨가 폐지를 수거하고 있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다. ‘삼한사온(三寒四溫)’이 옛말이 된 것처럼 추위 탓은 아니다. 추운 겨울을 녹이는 온정이 예전 같지 않아서다. 그럼에도 평범한 사람들은 늘 그랬듯 자신만의 방법으로 한 겨울을 맨 몸으로 맞서고 있다. 날씨가 아닌 경제에 한파가 몰아닥쳤어도, 먹고 살 길은 막막해도 오늘을 이겨내야 내일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폐지 수거로 생계를 잇고 있는 김 모(60·대전 서구) 씨는 올 겨울 나기가 유독 힘들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폐지 가격이 반토막 나면서 하루 꼬박 리어카 한 대를 꽉 채워도 손에 쥐는 돈은 만 원이 채 안 돼서다. 김 씨는 “보증금 50만 원, 월세 10만 원짜리 지하방에 사는데 기름 값이 비싸서 전기장판으로 겨울을 나고 있다”며 “건사할 자식도 없고 이 나이에 받아주는 곳도 없는데 이렇게라도 돈을 벌어야지 정부 보조금만으로는 생활하기 빠듯하다”고 멋쩍게 웃었다.
김 씨처럼 온종일 거리 위에 있어야 하는 정 모(62·여) 씨도 겨울은 유달리 힘든 계절이다.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를 하는 정 씨는 추위는 둘째 치고 미세먼지가 심해진 요즘이 가장 버티기 어려운 시기라고 한탄했다. 정 씨는 “추위야 따뜻하게 입으면 어느 정도 견딜만하지만 미세먼지 때문에 눈도, 목도 아프다”며 “나눠주는 전단지조차 사람들이 잘 안 받아 주니까 날씨도, 사람 마음도 쓸쓸하다”고 힘겨워했다.

반면 야쿠르트 배달을 하는 이정숙(45·여) 씨는 하루 종일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야 하는 일의 특성상 겨울나기가 쉽진 않지만 내 일이 있다는 보람, 자식을 위해 아직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위안으로 삼고 꿋꿋하게 겨울을 보내고 있다. 이 씨는 “날이 추워지는 겨울이면 야쿠르트 업계는 사실 비수기”라며 “추위에 손이 시렵고 최근 미세먼지까지 심해져 배달 일이 순탄하진 않지만 겨울도 이제 곧 끝이 있지 않겠냐”고 씩씩하게 웃었다.

지난해 여름 폭염기에 첫 삽을 뜨고 이제 막바지 아스콘 작업이 한창이던 지난 19일 대전 서구 둔산동의 한 공사현장에서는 힘겨움보다 해방감이 감도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공사에 참여한 김석중 씨는 “날이 추워도 여기선 가열된 아스콘에서 나오는 열기가 상당해서 야외 작업임에도 추위를 느끼기 어렵다”며 “공사도 다음주면 끝나서 그런지 힘든 줄 모르겠다”고 웃어보였다.

거리에 홀로 선 채 차량을 관리하던 채호병(32) 씨에게도 겨울 추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학원을 다니면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채 씨는 오히려 더운 여름보다 겨울이 더 좋단다.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다 돼 간다던 그는 일할 수 있다는 기쁨이 추위를 이겨내는 힘이라고 확신했다. 채 씨는 “아직 제대로 된 회사에 취직하지는 못했지만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나름대로 사회생활 맛보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사회를 겪어보지 않았는데 이런 추위에서부터 불만을 가지면 어디에서 내게 주어진 일을 잘 처리할 수 있겠냐”고 힘줘 말했다.

글·사진=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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