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 거대한 홀로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이 몹시 불편하면서도 마지막까지 책을 놓지 못한 이유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낯선 긴장감이었다. 사십대 대학교수가 교통사고를 당해 아내는 죽고 자신은 스스로 눈을 깜박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구가 되어버린다.

‘한가하고도 소박한 일이 바둑판처럼 되풀이되던 날, 어느 인생에나 있기 마련인 완벽하게 안녕하던 날들’에서 느닷없이 ‘완전히 무너지고 사라져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 현재’를 교차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 오기의 삶이 무너져버린 직접적인 원인은 교통사고였지만, 사고가 일어나기 전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미 삶의 여러 군데에 구멍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이런 구멍들이 모여 거대한 홀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얼마 전 인기리에 상영된 영화 ‘신과 함께, 죄와 벌’이 생각난다. 저승의 사자들을 따라 가며 자신의 삶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보게 되는 내용이었다. 죽음이든 불구든 반추라는 공통의 형식으로 짯짯이 헤집어 본 그들의 삶이 결코 ‘완벽하게 안녕하던 날들’은 아니었다.

이 책을 놓지 못한 것은 이상한 긴장감이었다. 표면상으로 보면 그들의 삶이 남들과 크게 다를 것 없이 평범해 보인다. 물론 성장과정에서의 굴곡은 있었지만, 이후 사회에서의 관계 등이 크게 문제될 만한 구석은 없어 보인다. 다만 비교적 순조롭게 풀려나간 오기의 삶에 비해, 아내의 삶은 매번 도전에 실패하고 스스로를 울타리 속에 가두게 된다. 이런 아내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자신에게는 무심한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이 서운하고 원망스럽고 밉기도 했을 것이다.

죽은 딸의 기록을 본 장모는 복수의 칼날을 사위에게 들이댄다. 움쭉달싹 어떤 저항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당하는 복수의 칼날은 잔인함을 넘어 엽기적이다. 그동안 예의와 경우를 아는 사람으로 행동했던 장모였기에 사위가 느끼는 극한의 두려움이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이된다.

우리는 너나없이 본의든 아니든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많은 구멍들을 만들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만든 구멍이라면 가끔씩은 뒤돌아보며 보듬고 화해하는 작업도 필요하지 않을까. 미스터리하고 섬뜩한 이 책이 그런 기회를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만든 구멍들이 언제 어디서 거대한 홀이 되어 덮칠지 사뭇 두려워진다. 박순규(아산도서관장)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