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우 한남대학교 홍보팀장
전 한국일보 기자

얼마 전 중앙아시아의 북쪽 추운 지방을 여행한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상 깊었던 것은 현지인들의 환대였다. 카자흐스탄의 소도시 택시운전사는 처음 만난 여행자와 짧은 대화를 나누며 친구가 되었고, 집으로 초대해 정성껏 준비한 식사를 대접했다. 어느 현지인은 예약된 숙소가 없으면 자신의 집에서 하루 묵고 가라면서 따뜻한 방을 선뜻 내주었다. 손님에 대한 이런 환대는 그 민족의 종교적 전통이 배어 있는 풍습이라고 한다.

필자도 이 정도는 아니지만 가끔 환대를 경험한다. 지난 연말 일본 오키나와국제대학으로 교직원연수를 다녀왔는데 그들의 환대도 특별했다. 공식 직무연수 이외에도 적지 않은 개인적 시간을 내어서 우리와 함께 식사를 하고 인근 지역을 여행하는 그들의 친절과 배려에 감동했다. 억지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환대(歡待)의 뜻은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함’이다. 우리 민족에게도 환대의 전통이 있었다. 사랑방은 만남의 장소였다. 형편껏 손님을 대접하는 풍습은 산업화, 도시화와 더불어 많이 사라졌다. 도시만 각박해진 것이 아니라 시골도 인심이 예전 같지 않다. 세상이 험해졌고 범죄의 영향도 클 것이다. 세상을 되돌릴 수 없듯이 환대의 전통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좀 더 친절하고 따뜻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우리가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2019년 새해 결심의 하나로 ‘사무실에서 손님을 환대할 것‘을 정했다. 벌써 스무 날 넘게 지났으나 실패한 날들이 더 많다. 성공한 횟수는 겨우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사무실에 있으면 종일 많은 손님이 찾아온다. 업무를 떠나서 가급적 환한 표정으로 친절하게 응대하고 따뜻한 차를 대접하려고 한다. 하지만 어김없이 내 안의 분주함이 배어나오고, 시간에 쫓기듯 일을 처리한 뒤 손님을 내보낸다. 업무와 상관없는 불청객(?)에게는 어떨까. 이들을 대하는 나의 표정과 태도는 더 못 할 것이다.

환대에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다. (꼭 환대에 돈이 드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항상 바쁘고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스스로의 굴레에 속는 것 같다. 손님을 위해 잠깐 할애하는 짧은 시간을 아껴서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환대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인색함과 습관의 문제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소중하며 똑같이 주어진다. 타인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쪼개서 내주는 것은 어찌 보면 돈을 기부하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다.

자신이 아끼는 것을 줄 때 그것이 진짜다. 사람을 환대하는 것은 내가 아끼는 시간과 물질을 나누는 것이다.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며 그 자체로 선하고 귀한 일이다. 앞으로도 시간의 속임수에 빠져서 환대의 실패가 반복되겠지만, 나름의 훈련을 한 해 동안 지속적으로 해보려고 한다. 꽁꽁 얼은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녹여주는, 그래서 따뜻한 관계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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