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알 막툼 경기장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요르단과 베트남과의 16강전에서승부차기 끝에 베트남이 승리하자 박항서 감독이 응원석을 향해 엄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이 24일 일본을 상대로 운명의 8강전 경기를 펼치게 되면서 국내 축구팬들의 관심 또한 달아오르고 있다. 
  이번 경기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과 같은 조에 속해 있거나 경우의 수에 영향을 주는 등 이해가 달린 경기가 아닌 전혀 별개의 경기지만 관심도 만큼은 국대팀 경기 이상으로 뜨겁다. 

  그 이유는 대략 3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 대리 한일전
  대한민국과 베트남은 한때 서로 총부리를 겨눴고 과거 민간인 학살, 파병 문제 사과 등 민감한 현안이 쌓여있는 미묘한 관계지만, 적어도 지금은 어느 나라보다 가까운 사이가 됐다. 베트남의 축구 영웅 '박항서 감독'이라는 존재 때문이다.
  박 감독이 지난 2017년 9월 사령탑으로 부임한 뒤 베트남은 여러차례 기적적인 결과들을 일궈왔다. 지난 2018년 1월 AFC U-23대회에서 베트남 축구 연맹 창립 최초로 국제 대회 결승에 진출, 준우승을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2018년 8월 아시안게임에서 4강에 들며 베트남 역대 최고 기록을 고쳐 썼고, 그해 12월에는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에서 10년 만에 우승컵을 번쩍 들어올렸다.
  이번 아시안컵에서도 8강 진출이라는 위업을 달성하면서 박항서 감독은 축구 영웅을 넘어 베트남의 축구 전설로 체급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런 그가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이다 보니 국내 축구팬들 또한 베트남의 승승장구를 기원하며 열광적인 응원을 보내고 있다. 즉, 제2의 대한민국 대표팀으로 여겨질 정도로 감정 이입이 된다는 뜻이다.
  이런 팀이 숙적 일본과 국제대회 8강전에서 맞붙다 보니 마치 한일전을 방불케 할만큼 관심과 열기가 더해지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 패배에 대한 적은 부담감
  한일전은 한국과 일본 국민들의 가슴을 달아오르게 하는 최고의 흥행 카드지만, 역설적으로 그만큼 부담스러운 경기다. 패배시 짊어져야 할 후폭풍, 즉 선수단의 사기 저하와 국민적 비난이 여느 라이벌팀 더비 경기와 비할 수 없을 만큼 과열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축구팬들에게 이번 베트남-일본전은 '꽃놀이 패'다. 이겨도 좋고 져도 문제 없다. 이기면 자국팀 승리에 버금가는 최고의 기쁨을 맛볼 수 있고, 만일 지더라도 자국팀 패배시 느껴야 할 괴로움은 느끼지 않아도 되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특히 피파랭킹 50위인 일본의 입장에선 혹시 랭킹 100위(2018년 12월 기준) 베트남에게 패배할 경우 재앙에 가까운 비난에 직면할 것이기에 국내 팬들을 두 배로 기쁘게 할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 '쌀딩크' 박항서의 승승장구
  이번 경기가 기대되는 또 다른 이유는 단연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축구역사를 새로 쓸 역사적 경기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베트남은 역대 아시안컵에서 8강전 진출이 최고 성적이다. 지난 2007년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공동개최 대회에서 8강에 진출, 꼴찌인 8위를 차지한 것이 역대 최고 성적이다.
  그러나 이번 박 감독이 승리할 경우 4강 진출이라는 신기원을 이루게 된다. 이미 지난 2002년 히딩크 감독이 이끈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4강 신화를 이룬 것과 같은 신드롬을 일으켜 베트남 히딩크, 즉 '쌀딩크'라 불리는 박 감독으로서는 진정한 위업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박 감독 개인에게도 영광이지만 한국이 얻게 될 베트남에서의 국격 상승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유무형적 가치가 훈장처럼 뒤따라오리라 기대된다.

  이제 운명의 순간까지 단 하루가 남았다.
  어떤 결과가 펼쳐질 지 24일 밤 10시(한국시간) 8강전 경기가 펼쳐질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알 막툼 스타디움으로 국내 팬들의 이목이 향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lapa8@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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