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순 대전시 기업지원과장

“사람들은 성공의 이유를 한 가지 요소에서 찾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실상은 어떤 일에 성공한 배경에는 운이 좋아 실패 원인을 피한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저마다의 의지로 딛고 일어선 결과물인 걸 알면서도 말이다.”

대전시는 지난 주 민선 7기 허태정 시장의 공약사업 중 하나인 ‘실패박물관’ 건립을 위해 전국의 전문가들로 구성한 추진단을 발족하고 세부 콘텐츠 개발에 들어갔다. 이 자리에 참석한 서울회생법원의 권창환 판사는 ‘안나카레리나의 법칙’을 소개하며 대전시가 추진하려는 실패박물관 건립에 대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며 적극적인 지원의 뜻을 밝혔다. 그가 소개한 안나카레리나 법칙은 진화생물학자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카레리나’의 첫 문장인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고 한 말에서 힌트를 얻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제각기 다른 불행과 실패의 사례를 분석하고 유형화하여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기 위한 전략을 구상할 때 명심해야 할 교훈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혁신창업 지원과 투자에도 불구하고, 실패기업에 대한 선제적이고 체계적인 정책은 마련되지 않아 창업기업의 생존율이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대전시의 창업 3년 이상 생존율은 49.5%, 5년 이상 생존율은 38.5%로 60% 넘는 창업기업이 5년 안에 실패를 경험한다. 제2의 손정의, 마윈을 꿈꾸며 이들이 불태웠던 5년의 세월이 단한번의 결과로 헛된 시간을 낭비했다고 치부할 수 있을까?

소비자면 누구나 알 만한 독일 바이엘사의 ‘아스피린’은 처음에는 염료로 개발한 것으로 당시의 시장에서는 실패한 제품이었다. 미국 3M사의 포스트잇도 접착제로 개발되었으나 접착력이 약해 실패제품이 됐다. 하지만 한 직원의 사고의 전환을 덧입혀 간단하게 응용하니 전 세계적인 히트상품으로 거듭나지 않았나. 이렇듯 실패를 숨기거나 피하지 않고, 실패를 발판삼아 성공한 사례들은 기업현장에서도 넘쳐난다.

실패를 자산화하여 성공의 주춧돌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창업자들이 실패로부터의 학습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두려움 없이 잠재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실패 및 성공사례를 분석하여 자료화하고, 분석 자료를 활용한 교육·컨설팅이 구현되는 전문 연구·교육기관 설립이 바로 대전시가 구상한 실패박물관이다.

GEM(Global Enterpreneur Monitor)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창업에 대한 인식부족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창업을 저해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우리 생활 주변에서도 내 자식이, 내 가족이, 내 친지가 창업을 한다면 대부분 말려보는 게 현실 아니던가. 창업시장에 뛰어든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시행착오를 통해 성공의 계단을 한 발씩 올라가야 하는 험난한 과정이다. 이런 면에서 과정의 실패는 고효율의 성과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실패를 스스로 덮어버리거나 주변의 질책을 감내하지 못하면 다음 계단으로 오를 기회는 영영 사라지고 만다. 미래에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지도 모르는 오늘의 실패 창업자들을 기쁜 마음으로 품어주고, 당당하게 재도전을 준비할 수 있도록 뒤에서 받쳐줄 전문기관이 있다면 ‘실패하면 어쩌지?’, ‘신용불량자로 인생을 망치면 어쩌지?’ 란 두려움을 갖고 있는 예비창업자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대전시가 추진하는 실패박물관(기업가정신박물관)에서는 실생활 제품을 사례로 실패와 성공원인을 분석하는 부문과 분석된 결과를 예비창업자부터 재창업자, 벤처기업들의 기업 경영과 창업에 적용하는 부문으로 구성하고 관련분야의 신뢰할 만한 전문 인력이 참여하여 교육, 컨설팅을 제공하려고 한다. 다만 명망 있는 전문가를 영입하고, 전국의 재도전자들에게 공신력 있는 컨설팅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시의 노력과 의지만으로는 일정부분 힘에 부치는 것도 사실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프로젝트로, 기업현장에 대한 지식과 노하우를 이미 갖추고 있는 재도전자들이 핵심고객인 만큼 중앙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지와 참여, 지원이 더해지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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