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용 전 대전시장애인체육회 사무처장

세상은 자연 속에 있는 생명체들이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다. 숲에는 식물과 동물 곤충 등의 많은 생명들이 경쟁하면서 그 질서 속에 조화를 이루며 숲을 이루고 있다. 그 질서 속에는 서로의 희생과 양보가 있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는가 한 번 돌아 볼 때인 것 같다. 나만의 이득과 내가 속해 있는 조직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상대방에게는 일체의 타협은 없고 오직 비난만이 있고 그 이상의 폭력도 서슴지 않는 실정이다. 서로 간의 양보는 없고 서로의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한 쪽이 자기의 의견을 관철 시킬 때까지 올인한다.

우린 우리와 반대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의견에는 그 어떤 정당성도 부여하고 않으려 한다. 물론 말로는 그 어떤 궤변을 내놓으면서 타협과 양보는 없다고 한다. 양극화된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불합리한 사고가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견을 관철시켜야만 승리자가 된다는 집단이기주의의 결론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분명 다른 쪽의 큰 피해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니 우리는 그 폐해를 분명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하는 것은 타협과 양보가 패배로 인식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타협과 양보가 왜 패배일까? 우리 모두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양보?타협 속에 화해와 조화가 필요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스스로의 아집 속에서 그 아집을 관철시키고자 궤변과 이기주의 행동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다. 결국은 서로 간의 입장을 확인한 후 타협과 양보로 절충한 후에 합의점을 찾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회는 양보와 타협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발전해 나가는 걸 알면서 왜 부질없이 힘겨루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결국엔 그렇게 할 거면서 꼭 모든 힘을 빼면서 싸우고 있다. 결심을 바꾸거나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른다고 해서 나와 뜻을 같이하는 우리가 상대방에게 패배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의견이나 결심을 바꾸기도 하는 것은 심사숙고한 뒤 고심 끝에 행해진 잘 된 행동이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인식하여야 한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의 의사결정의 순간 등에서 양보와 타협은 약방의 감초만큼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의견이 대립됐을 때 중요도가 낮은 것은 먼저 양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먼저 양보한다면 상대방은 그 이상의 양보를 나에게 준다.

나의 의견이 무조건 옳다는 보장도 없다. 빠르게 변화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항상 내 의견이 옳을 수는 없다.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 의견이 맞다고 생각든다면 과감히 나의 의견을 수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선현들은 양보할 상황에서는 물러설 줄 안다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 중 하나라고 말했다. 양보했다고 그것이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양보와 타협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승리자라고 할 수 있다. 양보와 타협은 나와 우리가 상대방이 어떤 여건 속에서 의견을 주장하는지 살펴보는 것이고 상대방의 가치관을 존중해주는 것이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것만큼 마음이 가벼워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기의 발전을 위한 도약대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가 인정 받으려고 무리수를 두는 것은 결국 자기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현대 사회는 급격한 산업화와 새로운 문화의 물결 속에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지금은 내가 아닌 우리 모두를 생각하며 상생할 수 있는 양보와 타협?조화가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사회다. 타협과 양보는 누가 일방적으로 이기거나 지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약간 얻고 상대방도 원하는 것을 약간 얻는 것이다. 즉 우리 모두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사회는 혼자 살아갈 수 없다. 타협과 양보로써 서로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고려하는 삶이 필요하다.

오늘은 타협과 양보로 마음이 한껏 가벼워지는 하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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