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순 배재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이영순 배재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무슨 놈의 한의사가 그러냐.” 이른 새벽 수화기 너머로 서운함 잔뜩 묻은 시어머니 목소리가 들린다. 신 새벽 다짜고짜 무슨 말씀인가 싶어 볼멘소리부터 나온다. 기운이 없어 보약 지으러 간 한의원에서 “그 연세면 기운이 팔팔하신 게 더 이상하지요. 얼마나 오래 사실라고. 또 녹용이세요?” 그러더란다. 처음도 아닌 한의원인데 그럴 수 있느냐며 목까지 메이신단다. “진짜요? 농담이었겠죠.” 건성으로 그러고 만다. “아녀, 농 아니고 웃지도 않고 그러더란 말여. 시간이 이리 빨리 갈 줄은 몰랐시야. 눈 한번 감았다 뜬 거 같은디….” 전화 끊을 핑계만 찾는 며느리의 심사를 알아채셨는지 쓸쓸히 말씀하신다.

하나 키우기도 버겁다는데 무려 일곱 남매를 기르셨으니 무쇠인들 견뎌낼 재간이 있었겠는가. 집안 대소사를 치르며 그 많은 자식들 키워내자니 당신 몸 부서지는 것도 모르셨을테고 늘그막에 약의 힘에 기대서라도 어찌어찌 견디고 싶으셨을 것이다. 키울 땐 그리 많던 자식들은 생일이나 명절처럼 이름 붙은 날에나 찾아오는 손님이 됐고 남은 것이라곤 닳고 닳은 관절 통증뿐이니 어찌 헛헛하지 않을 손가. 한의사의 무신경한 책망까지 들어가며 보신을 했건만 시어머니도 결국 병원신세를 피하진 못하셨다. 나무울타리에 걸려 넘어져 골반 뼈를 다치신 것이 화근이었다. 휠체어 신세를 지면서 온 몸의 신체기능이 급격히 약화돼 입·퇴원을 반복하셨고 자식들은 “연세를 생각하셔야지 어쩌자고 울타리를 뛰어넘으시냐”며 지청구를 해댔다. 언제나 마음은 청춘이라지만 늙은 몸이 청춘인 마음 쫓아가지 못함을 유념할 일이다. 정말 눈 한번 끔벅한 것 같은데 설을 지나 2월도 중반이다. 시어머니가 떠나신 후 처음 맞이한 명절이 돼서야 한의사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그토록 성이 나신 까닭이 늙은이 취급에 대한 서러움 때문이었음을 실감한다.

젊을 때는 그리도 더디 가던 세월도 중년 넘어서면 가속도가 붙어 시위 떠난 화살이 따로 없다. 내달리는 세월 앞에서 인생의 짐수레는 도무지 가벼워지지 않으니 어쩔 것인가. 체면치레의 범위는 더 넓어지고 노후 걱정에 재물 쌓을 욕심까지 더해지는 마당에 100세 시대를 살아야 한다니. 노인들 때문에 의료보험이며 교통비 부담이 가중돼 젊은이들 허리 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누군들 공짜 인생으로 살고 싶겠는가. 실업률 높은 나라에 사는 젊은이들도 가엾지만 노인들도 딱하긴 매한가지다. 누구는 나이 먹는 일이 편안해져서 좋다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할 수 있다면 세월의 밥그릇을 물리고만 싶다. 나이테 하나가 더해질 때마다 “어, 어” 하다가 중환자실에 실려가 자식들 고생시키면 어쩌나 조급한 마음이 들 때면 더욱 그렇다.

어느 해부턴가 나이를 물으면 까막까막 대답을 못하는 것이 필시 나이 듦을 거부하고 싶은 무의식의 장난질만 같다. 나이도 반품이 가능하다면 좋겠으나 그럴 수 없으니 받아들일 도리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 시간의 흐름을 역행할 수 없다면 나이의 값어치에 맞게 사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아무 곳에서나 어른 행세하지 않기, 양보와 배려를 당연시하지 않기, 현관에 큰 거울 세워두고 오가며 옷매무새 점검하기, 청결주의를 생활화하기, 말수와 목소리 줄이기. 스스로 몸과 정신의 건강을 지키되 몸보신에 집착하지 않기, 받으려는 마음보다 주는 행위의 즐거움 느끼기, 식탐이건 물욕이건 노탐을 부끄러워하기 등 100세 시대를 사는 수칙들을 수없이 되새김질하지만 그리 살기가 그리 녹녹하던가. 베풀고 양보하는 넉넉한 마음이나 노인의 품격도 두둑한 지갑을 감추고 있어야 가능하거늘 자식들 교육비에 결혼자금 걱정까지 해야 하는 나라에서 자신을 위해 딴 지갑을 챙길 여력이 있는 노인이 얼마나 될까? 어느 날 아침 전화선 너머로 들려왔던 시어머니의 쓸쓸했던 목소리가 100세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나의 미래와 겹쳐지며 드는 생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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