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한나 아렌트·한길사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어두운 오후 한때를 보내며, 나는 한가로이 앉아 아무 생각도 없이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이와 동시에 전쟁과 같은 온라인 전쟁터 한복판을 누비고 있는 열 개의 손가락은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중이다.

특히 왼손의 새끼손가락과 검지가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수많은 포로들을 사로잡고 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캐모마일 차 한잔을 후르르 삼킬 때, 나는 문득 내가 아이히만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긴다.

아이히만은 독일 나치스 친위대 중령이자 국가안보경찰본부 유대인담당 과장이었다.

또한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그는 '생각 없는 자'이다.

한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으로서 흠잡을 곳이 없었던 그였지만, 그에게는 치명적 무능력이 있었다.

“말하기의 무능력, 사유의 무능력, 그리고 타인의 처지에서 생각하기의 무능력이었다.

1961년 4월 11일 예루살렘에서 진행된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아렌트는 자신의 저서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재판 과정에서 상부의 지시에 따라 충실하게 명령을 수행했다고 항변하는 아이히만, 하지만 그의 충실한 명령 이행으로 수많은 유태인들이 학살된다.

그는 제대로 된 비판 정신 없이 상부의 명령에 맹종하면 어떻게 된다는 걸 보여준 중요한 표본이었다.

물론 아렌트의 개념은 여러 철학자와 사학자들에 의해 비판을 받는다. 아이히만은 단순한 관료가 아닌 게르만 우월주의를 주창했던 확신범이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그저 본업에 충실했던 이들이, '악(惡)'을 행하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장면을 볼 때 미소짓고 있는 아이히만의 표정이 교차한다.

“독일 만세, 아르헨티나 만세, 오스트리아 만세! 나는 나하고 연고가 있는 이 세 나라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전쟁 규칙과 정부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나는 준비되었다" -예루살렘에서 아이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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