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아지는 취업문에 씁쓸한 대학가
취업준비 위해 유예하는 경우도
청년실업률 8.9%, 19년 만에 최악

# 대전 A 대학에 다니는 이 모(27) 씨는 이달 졸업을 다음으로 미뤘다. 전자기계 분야로 진로를 잡았지만 아직 취업이 안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취업을 위해 여러 기업에 지원했지만 결국 합격통지를 받지 못한 그는 “기업에서 졸업하고 무얼 했는지 묻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고 대학생 신분에서 지원하는 것이 유리할 것 같아 졸업을 유예했다”며 “취업장수생이라는 말이 붙을까 겁난다. 올해는 더 열심히 해서 취업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심각한 취업난에 올해 각 대학 졸업식 풍경도 썰렁하다. 취업을 못한 대학 졸업생들은 맘 편히 웃지 못했고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는 청년들도 점점 늘고 있다.

21일 찾은 대전 소재 한 대학 입구에 걸린 현수막에는 ‘선배님들의 취업을 축하합니다’라고 쓰여 있었지만 주변의 분위기는 그리 밝아보이지 않았다. 졸업축하 현수막 옆에는 취업에 성공한 졸업생들의 이름들이 적혀있는데 명단에는 09, 10 학번 등 고학번의 이름도 보였다. 현역으로 취업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씁쓸한 졸업식에는 청년 실업 문제가 결부돼 있다. 최근 통계청의 ‘1월 충청지역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 1월 실업자수는 4만 6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 대비 51.8% 증가했다. 15~29세 청년 실업률은 8.9%로 전체실업률의 두 배에 달했다. 19년 만에 최악의 수치다.

고용한파는 청년, 그 중에서도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을 그대로 덮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취업률이 계속 떨어지자 취업이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 문제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한 대학 관계자는 “취업이 너무 안 되다 보니 아예 한 2~3년전부터는 취업이 내 탓이 아니니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졸업식이라도 가겠다는 사람들도 생겼다”고 말했다. 어차피 졸업과 동시에 취업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취준생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높은 실업률과 취업문 뿐만이 아니다. 주변사람들의 관심 역시 자신들에 대한 주변의 과도한 관심도 버텨내야 하는 것 중 하나다. 대전 판암동에 거주하는 취준생 박 모(27·여) 씨는 “설 명절 때 큰집에서 차례만 지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친척 어르신들이 취업문제를 화두로 꺼낼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려 부담됐다”며 “취준생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마음이 아프고 불편하다. 집에서는 기다려 준다고 하는데,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매번 부모님께 죄송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하자 졸업을 유예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대전 B 학교에 다니는 김 모(28) 씨 역시 졸업을 미뤘다. 김 씨는 “취업하기가 어려우니까 중간에 휴학을 많이 하는 편이라 졸업 안 한 동기들이 많다”며 “취업률이 낮다고 하는데 피부로 와닿는다. 나의 일이 된 상황에서 취업률이 낮다는 보도를 보면 마음이 좋지 않다”고 했다.

 

송승기 기자 ssk@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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