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아동청소년문학작가

 

 

뱀이 된 아버지

박연준

아버지를 병원에 걸어놓고 나왔다
얼굴이 간지럽다
아버지는 빨간 핏방울을 입술에 묻히고
바닥에 스민 듯 잠을 자다
개처럼 질질 끌려 이송되었다
반항도 안 하고
아버지는 나를 잠깐 보더니
처제, 하고 불렀다
아버지는 연지를 바르고 시집가는 계집애처럼 곱고
천진해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아버지의 팥죽색 얼굴 위에서 하염없이 서성이다
미소처럼, 아주 조금 찡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지나가는 뱀을 구경했다
기운이 없고 축축한 하품을 하는 저 뱀

나는 원래 느리단다
나처럼 길고, 아름답고, 축축한 건
원래가 느린 법이란다
그러니 얘야,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어둠이 고개를 다 넘어갈 때까지
눈을 감으렴
잠시,
눈을 감고 기도해주렴

▣ ‘연지를 바르고 시집가는 계집애처럼 곱고 천진해 보이는’ 아버지. 그 아버지를 ‘개처럼 질질 끌어’ 병원에 걸어놓았군요. 뱀은 시인이 보는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그러니 시인에게 아버지는 연민의 대상이자 맞닥뜨리기 불편한 공포의 대상입니다. 아버지는 현실세계에서 뱀처럼 어둡고 축축한 곳만 골라 다녔습니다.

가족들에게 떳떳한 가장이 아닌 꺼리고 멀리하는 비호감 존재였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늙어서는 치매까지 걸려 딸을 보고 “처제”라고 부릅니다.

아버지가 뱀처럼 길고 축축합니다. 아버지는 우리 곁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지나갑니다. 생각 같아서는 빨리 좀 지나가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않습니다. 생이 얼마 남지 않아 기운이 없는 채로 하품이나 하면서도 아버지는 쉽게 지나가지 않습니다. 한 줌 흙으로 돌아간 후에도 꼬리를 감추지 않은 뱀처럼 아버지는 우리들 기억 속에 징글징글하게 남아 있을 것입니다.
“아, 지독히도 질긴 아버지. 그만 좀 빨리 사라져주세요.”
“그래 얘야. 너무 걱정 말아라. 잠시, 잠시만 눈을 감고 기도해다오. 그 새 나는 없어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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