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 짙어가는 산줄기 앞 물은 고요하고 느리게 흐른다. 도심의 소리는 잦아들고 오롯이 자연의 소리에 집중하게 만든다.

 

 

‘춥다’ 소리를 연발하던 때가 얼마 전이었는데 어느새 햇살을 마주보고 걷다보면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계절이 됐다. ‘곧 여름이 오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시점, 대청호오백리길 3구간 호반열녀길을 다시 찾았다. 겨울의 자연이 쓸쓸한 기운을 내뿜고 있다면 봄의 자연은 생동감을 보여준다.
대청호오백리길 3구간의 시작점인 냉천버스종점에선 우선 코를 간질이는 아카시아 꽃향기가 진동한다. 또 멀리 보이는 대청호의 푸른빛과 나무들이 뿜어내는 초록빛, 하얗고 노란 꽃들까지 앞으로의 여정에 기대감을 선사한다.
바람소리와 새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냉천버스종점을 등지고 걷기를 시작한다. 포장이 잘된 길을 따라 한적한 시골 풍경을 감상하며 발걸음을 내딛다 보면 사진 찍기 좋은 명소 표지를 만날 수 있다. 어느 곳을 향해 카메라 렌즈를 내밀어도 멋진 이곳에서 ‘명소’라는 타이틀을 줄 정도라면 그냥 지나치기 힘들지 않을까. 잠시 본래의 궤도에서 벗어나보자.

 

사슴골 가는길에서 마주한 풍경

 

명소표지를 따라 나있는 근장골 방향 외길을 따라 한 20~30분 걸었을까. 주변 풍경에 가려져 있던 대청호와 함께 멋진 비경이 펼쳐진다. 이곳에 도달하기까지 걸은 그 길이 제법 가파르던 탓에 온 몸이 살짝 물기를 머금었지만 정상에서 시원한 바람과 눈앞에 펼쳐진 비경은 전의 고단함을 날려버린다.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자연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잠시간의 휴식으로 몸은 물론 마음까지 충전하곤 다시 길을 재촉한다. 다음 목적지는 냉천골삼거리다. 근장골을 내려와 시골길을 걷다보면 물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고 해 ‘양구례’라는 이름이 붙은 곳과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가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는 마산동 산성을 지나게 된다.

양고개골을 지나 냉천동삼거리에서 대전 최초 사회복지시설 미륵원을 향해 걷는다. 원래의 미륵원 자리는 수몰돼 지금은 볼 수 없지만 미륵원지 앞 비석에 새겨진 글귀만으로 이곳에서 선행을 펼쳤을 그들의 뜻을 알 수 있다. 미륵원을 지나 길을 따라 걷다보면 관동묘려가 송명의 선생 유허비가 나온다. 1994년 6월 7일 대전시문화재자료 제37호로 지정된 관동묘려는 열부(烈婦)로 정려(旌閭)를 받은 쌍청당(雙淸堂) 송유(宋愉)의 어머니 유씨부인이 1452년 82세로 죽자 이곳에서 장례를 지내고 그 옆에 건축한 재실이다. 송명의 선생 유허비와 돌다리로 이어져 나름 작은 아름다움을 제공한다. 충청이 왜 충절의 고장으로 불리는지를 알게 해주는 곳이며 3구간이 왜 호반열녀길로 명명됐는지에 대해 설명해주는 곳이다.

 

소나무 뒤로 보이는 추원사와 관동묘려 전경
관동묘려 가는 길에서 바라본 대청호

 

마음 깊숙이 선조들의 마음을 받아들이곤 이제 3구간 마지막을 향해 걷는다. 대청호를 유유자적하게 노닐고 있는 오리 떼와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구름, 바람 따라 흩날리는 나뭇잎과 꽃잎에게서 뜻 모를 위안을 얻으며 걷다보면 언뜻 한량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바쁜 일상에 나도 모르는 사이 지쳤던 심신에 자연이 주는 싱그러움이 가득해진 탓일까.
3구간의 끝이 다가오는 시점, 마산동전망대를 향한다. 보통 전망대라 하면 높은 곳에 위치해 있건만 이곳은 그렇지 않다. 폭신폭신한 흙길을 따라 10여 분 걸으면 대청호가 넓게 펼쳐진 그곳에서 마산동전망대를 만날 수 있다. 정자 하나뿐인, 말뿐인 전망대일 지라도 뭐가 대수랴. 눈 앞에 펼쳐진 대청호의 장관과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그 곳의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움을 선사한다. 바삐 살아온 이들에게 느긋함과 한가로움이 주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준다. 글·사진=조길상 기자 pcop@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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