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운의 우문우답] 말은 무섭고, 글은 더 무섭다
  • 금강일보
  • 승인 2019.05.3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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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되는 대로 함부로 하거나 속되게 하는 말’을 막말이라고 한다. 막말 한 마디로 호되게 낭패를 보는 사례를 부지기수로 보았다. 근래 들어 정치인들이 막말 파문에 휩싸여 곤욕을 치르는 일이 빈발했다. 뒤늦게 궁색한 변명을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 막말이 끊이지 않는 것은 ‘실(失)’이 있는 만큼 ‘득(得)’이 있다는 계산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언론에 주목을 받아 유명세를 타고 보는 것이 정치인들의 생리인 것을 생각하면 그들은 막말을 통한 노이즈마케팅(noise marketing)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정치인 가운데는 막말의 수위를 점점 높여가며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해가는 인물도 있다. 그들은 국민정서를 아랑곳하지 않고 여과 없이 말을 함부로 해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안겼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행위를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막말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의 막말은 대중의 공분을 유발하지만 어떤 이들은 막말에 환호하고 지지를 보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를 안기는 막말퍼레이드는 이어지고 있다. 막말은 누군가에게 모욕을 안기지만 누군가의 지지를 끌어안을 수 있는 아주 후진적인 정치 형태이다.

말이 무섭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다. 그래서 혀를 잘 놀려야 한다는 내용의 속담과 격언은 차고 넘친다. 말 한마디의 실수로 수십 년 공든 탑을 무너뜨린 사례는 많다.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알고 있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별개이다. 충분히 알 만한 인물이 설화(舌禍)를 자초하는 일을 자주 본다. 설화가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인간관계란 모두 혀에서 시작해 혀로 끝난다. 자고로 혀를 놀릴 때는 조심,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말은 참으로 무섭다. 그런데 말보다 무서운 것이 있으니 그것이 글이다. 말은 휘발성이 있어 그대로 재현되지 못하지만 한번 쓴 글은 그 기록성 때문에 변명을 불허한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글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잘 알지 못한다. 당해보고 겪어봐야 비로소 무섭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흔히 ‘펜이 칼보다 무섭다’라는 말을 하지만 직접 겪어보지 못한 이들은 이 말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한다. 나는 아주 여러 번 아주 다양한 형태로 글이 갖고 있는 무서운 힘을 실감했다. 그래서 함부로 펜을 놀리지 않으려고 애쓴다. 특히 누군가를 공격하는 글은 가능하면 쓰지 않는다.

현직 기자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 갖가지 형태의 제보를 받아 취재를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A가 B를 파렴치한 인물로 몰아붙이며 기사를 써서 혼내줄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주변의 상황을 면밀하게 취재하고 B의 말을 들어보면 제보는 A의 사적 감정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만약 A의 말만 듣고 기사를 썼더라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를 뻔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혹자는 누군가에게 서운한 일이 생기면 그 내용을 신문에 보도해 상대를 혼쭐 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기자를 찾는다. 제보자는 상대가 언론을 통해 공개적인 망신을 당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 통쾌함을 맛보고 싶어 한다. 실제로 자신이 원하는 일이 벌어질 경우, 그 후의 파장에 대해서는 깊은 사고를 하지 않는다.

힘으로 누군가를 제압한 사람은 훗날 힘으로 공격을 받게 되고, 혀로 누군가를 공격한 사람은 훗날 혀로 공격을 받게 된다. 마찬가지로 펜으로 누군가를 공격하면 펜으로 복수를 당하게 마련이다. 어린아이들이 불장난을 하는 것은 불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글이라면 모를까 특정인을 지목해 공개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폭발물 앞에서 불장난을 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짓이다. 작은 불장난을 하다보면 점점 대범해져 큰 불장난을 하게 마련이다. 온라인상에서 댓글 몇 번 달다가 통쾌함과 짜릿함을 맛보면 과감해지게 되고 그러다가 큰일을 저지르게 된다. 불에 데어봐야 화상이 치명적이란 사실을 안다면 어리석음의 극치이다. 글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주먹보다 말이 무섭고, 말보다 글이 몇 곱절 무섭다는 사실을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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