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이슈]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와 민중당 대전시당 공동 조사를 통해 확인된 국립대전현충원 친일반민족행위자 안장 현황.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제공
[반복되는 현충원 안장 자격 논란…청산 못한 ‘과거사’ 업보
시급한 과제 ‘국립묘지법 개정·공과(功過) 가릴 공론화의 장’]
 
우리 사회는 여전히 미래를 말하기보다 과거에 얽매여 있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붙들고 미래로 가는 건 어리석은 일이지만 여기엔 ‘과거사 청산’이라는 선결조건이 있다. 반세기가 넘도록 해묵은 숙제를 풀지 못한 업보는 제64주년 현충일을 맞는 2019년 6월, 오늘까지 현재 진행형이다. ▶관련기사 3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는 올해 국가보훈처가 독립유공자 공적 전수조사에 돌입했다.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보상을 받은 ‘가짜’를 발본색원하고 역사적 평가를 통해 ‘진짜’ 독립유공자와 유족에게 최고 예우를 하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서울과 대전 등 국립현충원에 묻혀선 곤란한 이들의 안장 문제는 답보를 거듭하고 있다. 친일반민족행위가 드러난 인사들의 강제 이장 근거를 담은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해가 갈수록 자격에 의문이 제기되는 인사들의 현충원 안장이 늘고 있는 까닭이다. 지난 2월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와 민중당 대전시당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발간한 ‘대전현충원 친일반민족행위자 백서’에 따르면 만주국군에서 간도특설대로 활동, 반민족행위가 확인된 윤수현이 1994년 안장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만주국군 이력을 가진 김영택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 28명이 대전현충원에 잠들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묘역별로 살펴보면 장군묘역이 22명(78.5%)으로 가장 많았고 경찰묘역 3명(10.7%), 장교묘역 2명(7.2%), 국가사회공헌자묘역 1명(3.6%) 순이었다.

이와 함께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는 오는 6일 그간 조사와 연구를 토대로 최근 친일 의혹이 불거진 애국지사 송세호를 비롯해 현충원에서 이장해야 할 친일반민족행위자·군사반란 및 민간인학살 가담자 65명의 명단 공개를 예고, 논란은 한층 더 가열될 전망이다.

현충원 안장 자격을 둘러싼 시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가장 확실한 해결책인 국립묘지법 개정이 지연되고 있는 탓이 크다. 뚜렷한 법적 근거가 전무한 상황에서 ‘훈장 수훈으로 공로를 인정받았다’면서 이장에 반대하거나 ‘반민족행위자와 독립유공자가 한 곳에 묻혀선 안 된다’는 주장이 얽히고설키기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경표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사무국장은 “현충원에 친일반민족행위자와 독립운동가들이 함께 안장돼 순국선열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시민의 분노를 사고 있다”며 “3·1운동과 임정수립 100년을 맞이하면서도 친일잔재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라고 개탄했다.

지역 학계에선 국립묘지법 개정과 논란이 되는 현충원 안장 인사의 윤리적·공적 논쟁을 통한 사회적 논의와 평가를 병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진모 한남대 사학과 교수는 “역사 해석에 의한 반역자만이 아니라 현행 법률상 범죄자에 속하는 사람은 현충원 안장에서 배제하는 게 옳다고 본다”며 “친일반민족행위가 뚜렷한 인사를 현충원에 모시는 게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서 당장 해결은 어렵더라도 공과(功過)를 명확히 가릴 공론화의 장을 마련해 논의를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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