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일본화가가 그린 흑단령을 입은 김이교 모습.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신미통신일록

최근까지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외교관계에 있어서는 상당히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두 나라간 역사적인 관계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에 함께 풀어가야 될 숙제다. 과거 조선의 유교문화 속에서 두 나라 간 통신사절단을 통한 교류는 오늘날 양국의 관계를 풀어가는 데 작은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도 있다.

조선의 통신사는 국왕의 국서를 가지고 일본에 파견된 외교사절단으로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약 200여년간 12회 방문이 이루어졌다. 통신사는 사절단 대표인 정사(正使)와 함께 관료, 화원, 의원, 악사, 역관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참여하여 두 나라간 문화교류를 촉진시켰다.

그러한 측면에서 총체적인 국제 문화교류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충남 예산출신 죽리 김이교는 1811년 신미년 최후의 통신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5개월 이상이 걸리는 긴 여정을 통해서 김이교는 통신사의 임무를 수행하였고, 이후 그 공적을 인정받아 우의정에 까지 오른 인물이다. 조선의 마지막 통신사였던 김이교의 사행은 ‘신미통신일록’을 비롯하여 그를 보필한 유상필이 쓴 사행기록인 ‘동사록’ 등 일본과의 교류의 흔적들이 곳곳에 발견된다.

한국과 일본 민간단체는 양국에 남아있는 조선통신사 기록물들이 과거 두 나라의 선린 우호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자원이라고 규정하고, 2012년부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추진을 논의하였다. 충청지역에서는 마지막 통신사 죽리 김이교 관련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이 2015년부터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협력을 강화하였다. 그 결과 2017년 10월 31일 조선통신사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한일 공동으로 등재되었다.

충남역사박물관이 소장한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22호 김이교 유물 일괄 속에는 김이교 영정, 인장, 호패, ‘신미통신일록’, 종묘배향공신교서 등 다양한 유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 ‘신미통신일록’이 조선통신사 여정의 기록으로 세계기록유산에 포함되었다.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계기로 우리 충청의 유학자 김이교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와 함께 ‘신미통신일록’ 번역사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이상균(충남역사문화연구원 백제?충청유교특성화추진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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