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과수 중부분소 설립 후 현장중심 감식 강화
천안초 축구부 화재참사 등 굵직한 사건 담당

 

대전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대전연구소(옛 중부분소)가 설립된 지 올해로 19년을 맞이한다. 지역사회에 뿌리내린 국과수는 지역에서 발생한 강력범죄와 대형 사고의 원인을 풀어내는 열쇠 같은 존재로 자리 잡았다. 서중석(62)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과 김진표(52)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대전연구소장을 만나 과학수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해 들어봤다. 과학수사계의 두 거목(巨木)이 들려주는 과학수사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지난 12일 국과수 대전연구소 인근에서 서 전 원장과 김 소장을 만났다. 국과수 원장을 역임한 서 전 원장은 현재 에스제이에스법의학연구소장, 성균관대 교수로 검안·부검 등을 통해 현장과 마주하고 있다. 김 전 소장은 현직 소장이자 법공학자(포렌식 엔지니어링)로 지역사회의 사건·사고의 진실을 과학적으로 밝혀내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이들과 국과수 대전연구소의 인연은 지난 2000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중부분소 설립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 전 원장은 중부분소의 초임 소장으로 취임했고 김 소장은 2002년 중부분소의 이공학실장으로 발령 받았다. 당시 국과수는 서울중심이었으며 부산과 광주 등에만 지역 연구소가 있을 따름이었다. 자연히 지역에서 사건·사고 발생 시 국과수의 시신 운구 등이 쉽지 않은 문제가 있었는데 국과수 중부분소의 설립은 지역민의 이같은 고충을 해결해줬다.

당시 대전에서는 화재현장에서 안타까운 사건·사고가 많이 일어났다. 2003년 3월 9명이 숨지고 15명이 부상한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화재 참사가 대표적이다. 당시 사고소식을 접한 서 원장은 곧장 현장으로 향했다. 그는 “국과수로 운구를 기다리기에는 시신 훼손 등이 염려됐다. 아이들이 누구인지 확인이 돼야 장례일정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며 “비가 많이 오는 날 밤에 소식을 듣고 곧장 현장으로 달려갔다. 도착해서 불에 타 숨진 아이들을 개인 식별을 해줬다”고 말했다. 김 소장과 다른 국과수 직원들도 분주히 움직였다. 감정을 통해 화재 원인이 콘센트 단자의 절연파괴에 의한 전기화재임을 밝혀냈다.

또 서 전 원장과 김 소장을 비롯한 국과수 직원들은 과학수사로 숨겨져 있던 이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얼핏 보기엔 단순 사고지만 끈질긴 과학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힌 것이다. 이들은 “지난 2005년 화재 사건이 나 여성과 아이가 숨졌다. 당시 국과수는 감사 중이라 검안을 못나가는 상황에서 모 병원에서 여성과 아이가 ‘불이 나서 죽었다’고 봤다”며 “그런데 화재사 같지 않다는 의문이 들었다. 당시 국과수는 감사 중이었던 상태라 부검이 어려웠지만 개인 식별이 필요하다고 설득해 부검을 했다. 결국 이들이 화재가 아닌 청산염중독으로 숨진 사실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노력을 통해 중부분소는 국과수의 패러다임을 바꿔 놨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 전 원장과 김 소장은 “중부분소의 설립은 피동적 감정에서 현장 중심적인 공격적 감정으로 바뀌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이를 통해 365일 무료 검안이나 화재 현장으로 가는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현장형 조직으로 출발한 최초의 연구소”라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이러한 선배들의 노력, 그리고 과학수사의 힘을 믿는 연구원들의 열정에 힘입어 국과수 대전연구소는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2010년 8월 19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중부분원으로 개편 됐으며 2013년 11월 15일 대전과학수사연구소로 확대돼 지역 과학수사의 메카로 자리매김 했다. 대전경찰 관계자는 “대전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대전연구소가 생겨 중요사건 발생 시 합동 감식 등을 신속히 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신속하고 정확한 사건 해결이 가능해졌다”고 평가했다.

곽진성 기자 pen@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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