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단 돈 1만 원으로 온 가족이 행복할 수 있다면 믿을까?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비결을 알았다. 아니 분에 넘치는 호사스런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휴일 오후 대전 갑천 변에서 걷기 운동하고 집에 돌아 올 때, 또는 도솔산 등산을 하고 집에 돌아 올 때, 인근 재래시장에 자주 들른다. 시장에 들어서면 우선 생선가게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자, 오늘은 거저 주는 거나 다름없는 가격입니다. 고등어도 엄청 싸고, 꽁치는 더 싸고, 오늘의 오징어는 바다에서 금방 건저 올린 것처럼 펄펄하고 싱싱합니다. 어서 오십시오. 무지 무지하게 쌉니다.” ‘거저 주는 것이나 다름없이 싸다’는 재래시장 상인의 너스레는 365일 똑같은 ‘고객 유혹수법’이지만 누구도 ‘과대선전’이라 나무라지 않는다. 오히려 그 구성지고 신명나는 목소리가 정겨운 장터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통통하게 알이 밴 큼지막한 동태 한 마리를 골랐다. 4000 원이다. 그런데 투박하고 묵직한 칼로 동태를 힘껏 내려치면서 젊은 생선장수가 단골인 내게 던지는 말이 재미있다. “오늘도 축하드립니다. 또 행운을 잡으셨습니다.”‘놈의 뱃속에 알이 가득하다’는 뜻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생선가게에서 동태를 고를 때, 주인에게“저 놈 뱃속에 알이 들어 있을까요?”묻곤 한다. 그러면 생선장수는 "저도 몰라요. 뱃속을 열어봐야 알지요."라고 답한다.??두 아들이 유난히 동태 알을 좋아한다. 아내가 동태를 한 냄비 푸짐하게 끓여 식탁에 올려놓으면 두 아들은 ‘알의 유무’부터 먼저 확인한다. 알이 들어 있지 않으면 잔뜩 부풀었던 기대가 무너지는 것처럼 “에이 없네. 없어!”하면서 실망하고 만다.유년시절에는 동태 알을 서로 많이 차지하려고 곧잘 숟가락 싸움을 벌이기도 했던 형제다. 두 형제 모두 군 복무를 마친 뒤로는 달라졌다. 숟가락에 먼저 알을 떴다가도 “형님 먼저, 아우 먼저”양보하는 모습을 보는 아비는 그저 흐뭇하기만 하다.이런 저녁식탁 풍경을 익히 잘 아는 지라, 나는 생선가게에서 동태를 살 때, 간혹 알이 들어 있지 않은 놈을 만나면 별도로 판매하는 생선 알을 듬뿍 사오곤 한다.저녁식탁에서 동태 한 마리 끓여 놓고 온 가족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서 나는 국물만 먹어도 흐뭇하고 한없는 행복감에 젖는다.김소운(金素雲 1908~1981)의?명?수필 가운데 가난한 날의 행복에는 감동적인 세 쌍의 부부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중에서 쌀이 떨어져 밥 대신 고구마를 아침상에 내놓은 ‘시인의 아내’ 이야기를 나는 가슴 아리게 좋아한다.‘쌀이 떨어졌으면 왜 미리 말을 못했느냐’고 나무라는 남편에게 아내가 다소곳이 건네는 말이 긴 여운을 남긴다.“저의 아버님이 장관이셔요. 어디를 가면 쌀 한가마 없겠어요? 하지만 긴긴 인생에 이런 일도 있어야 늙어서 얘깃거리가 되잖아요.”단돈 4000 원짜리 동태 한 마리 사 들고 들어와서 이런 수필 한 줄 떠 올리며 호사스런 행복감을 맛보는 것은 내 가정형편이 궁색해서가 아니다. 그 옛날 선친께서 시골 장에 가시면 빈손으로 들어오시는 법이 없었다. 으레 꽁치나 고등어 몇 마리 사들고 들어오셨다. 그러면 어머니는?고기보다 무를 더 많이 넣고 한 솥 넘치게 푸짐하게 끓여주셨다. 그 때의 ‘꿀맛’ 을 오늘날 내가 잊지 못하고 기억하는 것처럼, 나중에 내 아이들도 아버지가 되면 이 같은 한 가장의 ‘동태 한 마리의 소박한 행복’을 그들 자식들에게도 이야기하면서 웃음꽃을 활짝 피우리라 믿기 때문이다. 윤승원은. 대전·충남수필문학회 회장으로 금강일보 논설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삶을 가슴으로 느끼며, 덕담만 하고 살 수 있다면, 우리 동네 교장 선생님, 부자유친, 아들아, 대한민국 아들아 등이 있다. 윤승원(금강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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