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편리함에 익숙해져
편안에 길들여진 사람
삶이 삶아지면
삶은 끝이 나네

설렘 때문에
편안을 거부하고
호기심 때문에
불편을 감수하네

포기하지 않는 불편이
상황을 반전시켜
새 길을 만드네
새 세상을 만드네

개구리를 소재로 한 심리학 ‘삶은 개구리 증후군’과 철학 동화 ‘우유통에 빠진 개구리’는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끓는 물에 집어넣은 개구리는 즉시 뛰쳐나와 살지만 서서히 덥혀지는 미지근한 물에 들어간 개구리는 위험을 인지하지 못해 결국은 죽게 된다. 점진적으로 고조되는 위험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하거나, 그에 대한 적절한 조기 대응을 하지 못하면 화를 당하게 된다는 이론이 ‘삶은 개구리 증후군’이다. 끓는 물에 대한 개구리의 반응을 살피려는 실험은 19세기 후반에 몇 차례 있었다. 1869년 ‘영혼의 위치가 어디인가?’를 연구하던 독일의 생리학자 프리드리히 골츠는 개구리에 관한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뇌를 제거한 개구리는 물이 끓을 때까지 오래 남아 있지만, 온전한 개구리는 물 온도가 섭씨 25도에 도달하면 뛰쳐나왔다. 1872년 생리학자인 하인즈만과 1875년 프래처는 온전한 개구리조차 물을 아주 천천히 데우면 끓는 물에서 뛰쳐나오지 않고 죽게 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에는 삶은 개구리 요리가 있다. 손님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하기 위해 식탁 위에 버너와 냄비를 가져다 놓고 손님이 보는 앞에서 개구리를 산 채로 냄비에 넣고 조리한다. 처음부터 물이 너무 뜨거우면 개구리가 펄쩍 튀어나오기 때문에, 개구리가 가장 좋아하는 15도의 따듯한 물을 부어 둔다. 개구리는 기분이 좋아 움직이지 않는다. 이때 버너에 불을 붙여 냄비의 물을 서서히 데우면 개구리는 자기가 삶아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죽어간다. 변화가 너무 느리기 때문에 자기에게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서서히 죽어가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삶은 개구리 증후군’, 다른 말로는 ‘변화무지증후군’ 또는 ‘비전상실증후군’이라고 한다.

폴 크루그먼 교수는 2009년 7월 12일자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삶은 개구리 증후군’에 빗대어 당시 미국 경제를 평가했다. 그는 “미국이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인한 아주 급한 불을 끈 것 같지만 고용상황이 서서히 악화돼 2010년 말에는 실업률이 최고조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경제가 천천히 끓는 물에 진입해 있어 상황의 심각성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위험이 심화된 시점에서 정책을 동원하면 실기(失期)하게 되니 정부는 경제 회생을 위한 대규모 정책을 즉시 집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정책 집행과 정책 효과 사이에는 시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정책 집행이 지체되면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게 된다고 본 크루그만 교수는 이러한 삶은 개구리 문제는 경제보다는 환경 쪽에 그 심각성이 더하다는 주장을 폈다. 환경은 경제학적으로 공공재로 정의된다. 누구나 즐기는 재화이지만, 이를 잘 유지하기 위한 관심과 비용 지불에는 누구나 인색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미국 부통령을 지낸 앨 고어는 2006년 상영된 영화 ‘불편한 진실’에서 지구 온난화 문제를 경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류가 언젠가 부글부글 끓는 지구에서 삶은 개구리와 같은 신세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선 이산화탄소 감축에 당장 나서야 한다는 것이 당시 앨 고어의 메시지였다.

나는 지금 먹고사는 데는 걱정이 없는데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라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한국 사회에 담겨있는 물의 온도는 너무 많이 달아올랐다. 그동안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의 온도를 즐기면서 설마 하는 안일함으로 애써 변화의 징조를 외면해 온 결과다. 작은 변화에 둔감하다 보면 결국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손 쓸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는 사실을 망각해선 안 된다. 자기를 요리하는 물이 따뜻한 목욕물이라도 된다는 듯이 편안하게 잠을 자다가 죽어가는 개구리가 되기 싫다면 우리는 스스로 변해야 한다. 책임은 지지 않고, 헐뜯고 비방하는 데만 익숙한 정치인들의 반복되는 행태를 보면서 방관자로 변해버린 우리의 모습을 되찾고 변화를 위한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꼭 지켜야 할 가치,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일어서야 한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