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자 이순복 대하소설

호랑이가 나타나자 먼저 말이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사람들도 머리끝이 오싹했다. 오줌을 싸며 벌벌 떠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모양을 직시한 마난은 군사들에게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징을 치게 하였다. 그러자 호랑이는 다시 한 번 더 포효하면서 원탁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내달았다.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자 준비하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오금이 저려서 호랑이를 향하여 활시위를 당기지 못했다. 저리 큰 짐승을 대항해 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호랑이는 이런 상대를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하필이면 원탁을 골라 나아가자 원탁의 말이 놀라 크게 울며 앞발을 창졸간에 들어 올렸다. 그러자 원탁이 말갈기를 붙잡고 버티었으나 낙마직전 까지 이르렀다.

“아아아~.”
원탁이 창졸간에 당한 일이라 비명을 질렀다. 호랑이는 달려들고 말이 놀라서 날뛰는데 만약 원탁이 낙마한다면 그의 생명은 폭풍 앞에 등불이 될 위기였다.
“말갈기를 꼭 붙드세요!”

이런 위급지경에 처하자 만년이 소리치며 순간 동작으로 말에서 뛰어 내려 원탁의 말고삐를 바로잡았다. 대단한 순발력이었다. 이 모양을 보고 올합대를 위시한 여러 영웅들이 호랑이를 향하여 활시위를 당기려 하자 만년이 이를 만류하기를 “함부로 활을 쏘지 마시오. 잘못하면 군사를 상하게 하고 또 좋은 호랑이 가죽을 망치게 됩니다. 호랑이 한 마리 때문에 여러분의 수고를 끼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이놈을 잡아 대왕의 방석이 되게 하겠습니다.”

만년이 그리 말하고 원탁의 말고삐를 놓아주고는 호랑이를 향하여 달려들었다. 호랑이는 만년이 맨주먹으로 다가오자 어흥~ 소리를 내며 송곳니를 드러내어 입을 크게 벌렸다. 그리고 눈에서는 불꽃이 튀어나오고 입 언저리에 난 길고 검은 수염은 빳빳하게 곧추서서 위엄과 두려움을 가중시켰다. 그러더니 호랑이는 뒷발을 슬쩍 굽히는가 싶더니 땅에 착 붙어서 만년을 향하여 공격할 동작을 만들었다. 이런 위급상황을 두고 만년은 호랑이를 향하여 달려들 기세를 갖추고 조심스럽게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벽력같은 큰소리로 “네 이놈 덤벼봐라! 호랑아!”

그 소리를 기다렸다는 듯 호랑이는 공중으로 몸을 솟구쳐서 만년을 향하여 앞발로 가격할 체형을 갖추고 덤벼들었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유영이 단단히 준비하고 있던 활시위를 힘차게 당겼다가 놓았다.

“피웅….”
유성처럼 날아간 화살은 막 튀어 오른 호랑이 어깨를 명중시켰다. 하지만 호랑이는 이미 땅을 박차고 오른 뒤라 만년에게 달려드는 데 장애가 되지 않았다. 허나 만년은 아주 빠르게 몸을 슬쩍 피하면서 자기 곁으로 지나가는 호랑이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주먹을 먹였다. 이에 호랑이는 헛발질을 하면서 땅바닥에 벌렁 넘어지는가 싶더니 절묘한 몸동작을 하여 네 발로 몸을 지탱하더니 만년을 향하여 다시 달려들었다. 만년도 호랑이가 공격할 것을 미리 짐작하고 아주 쉽게 몸을 피하면서 주먹을 다시 내어 질렀다. 그러자 기세등등하던 호랑이가 콰당~하는 소리를 만들며 땅바닥에 떨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일어났다. 그러나 이제는 만년을 향하여 공격하지 않고 금수왕의 위세를 보이며
“어흥~.”

위엄 있게 소리 내어 노려보았다. 이와 같이 한풀 꺾인 호랑이를 향하여 이번에는 만년이 선제공격을 시도하였다. 만년은 한동안 호랑이와 눈싸움을 벌리다가 때가 왔는지 아주 빨리 몸을 날려 호랑이의 허리를 껴안았다. 이제 만년과 호랑이가 한 덩어리가 되어 뒹굴기 시작하였다. 엎치락뒤치락 얼마동안 실랑이를 하더니 숨소리가 작아진 호랑이 위로 만년이 타고 올라앉았다.

“이놈 다시 한 번 더 용을 써 보지.”말하고 바른 주먹으로 호랑이의 머리통을 힘껏 쥐어박았다. 몇 차례 주먹세례를 받은 호랑이는 마침내 어흥~하는 소리를 약하게 남기고 숨통이 끊어졌다. 네 다리를 쭉 뻗고 죽었다.

“너도 내 손에 죽었다.”

만년은 여러 번 호랑이를 잡아 본 경험이 있는 듯 그리 말했다. 그리고 맨손으로 호랑이를 번쩍 들어 어깨에 둘러메고 원탁과 여러 사람 앞에 옮겨 놓았다. 호랑이의 따뜻한 몸에서 아직도 생명의 원기가 남아있었는지 꼬리가 한차례 맴을 돌렸다. 만년은 호랑이를 잡아 둘러메고 오는데 큰 힘을 쏟은 터라 숨을 고르며 말하기를 “대왕께 드릴 방석을 대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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