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자 이순복 대하소설

혜제는 무제의 장례를 마치고 외조부 양준을 태부로 봉하고 정사를 섭정케 하였다. 그리고 태자비 가씨를 황후로 삼고 아들 휼을 태자로 책봉하고 재인사씨(才人謝氏)를 태자비로 삼았다.

이때 여남왕 양은 사마중달과 복씨부인 사이의 소생으로 허창에 진수하여 예주의 군마를 총독하고 있었다. 그는 무제의 신임이 있어 생전에 자기에게 정사를 맡길 뜻을 흘린 바 있었다. 그래서 은근히 정권을 잡을 날을 기다렸는데 갑자기 무제가 붕어하자 양준이 하루 밤 사이에 정사를 독점하므로 '닭 쫓던 개' 꼴이 되고 말았다.

양준은 일찍이 여남왕 양의 속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혜제를 업고 처리했다. 그리고 중대한 일은 모두 다 칙명으로 방패를 삼아 정사를 펼치자 이를 반박하지 못했다. 양준은 조정을 출입할 때도 철갑병 3천으로 호위케 하자 사마양은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양준은 사마양이 영지로 돌아가지 않고 허창에서 계속 머물자 불안하여 그에게 칙명을 내리기를

“여남왕 양은 국상이 끝나고 혜제가 등극한 지도 여러 날이 지났는데 어찌하여 도성에서 세월을 보내는가. 조속히 영지로 돌아가라.”

이에 사마양이 양준에게 대답하기를

“삼가 어명을 받자와 영지로 돌아가기 전에 폐하를 배알하고 가고 싶소.”

“그럼 기다리시오. 내가 폐하께 주달하여 보리다.”

양준은 아주 시원하게 대답하였으나 내전으로 들어간 척하다 말고 다시 시간을 끌고 돌아와 싸늘하게 말하기를

“폐하께서 용체가 불편하시어 누워 계십니다. 배알하는 것은 필요치 않으니 그냥 떠나라 하십니다.”

사마양은 더는 고집을 부릴 수 없어 조정에서 나와 생각해 보니 양준의 간계가 불쾌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사마양은 그날 밤 뜻이 맞은 형제와 대신들을 은밀히 불러오게 하였으나 곧 양준에게 알려지고 말았다. 양준은 신속히 철기군 5천을 풀어 사마양의 집으로 통하는 모든 길목을 막고 명하기를

“아우는 들어라. 여남왕과 아무도 통하지 못하게 각별히 유의하라!”

이에 늦은 밤까지 동지들을 기다리던 사마양은 거리에 경계망이 구축되어 양준의 마수에 걸린 것을 알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여남왕은 그날 밤을 하얗게 새고 나서 허창으로 달아났다. 양준은 여남왕이 떠나자 아린 이가 빠진 것 같이 편해 모든 정사를 마음대로 농락하였다. 이리하여 양준의 권세는 천자를 능가하고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그는 범부에 불과하여 정사를 처리함에 있어서 대의명분을 잃을 때가 많았다. 양준의 정사가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조정 대신들의 빈축을 크게 샀다. 그러나 백치황제는 말이 없었으나 세상은 조용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정사가 확연히 헛바퀴를 돌자 양준은 한 계책을 생각하여 혜제에게 주달하기를

“폐하께서 보위에 오르신 후로 태평성세의 치세라 하니 폐하의 홍복인가 합니다. 이런 때에 폐하께서는 백성에게 부역을 줄이고 군신에게 관작을 더하시면 성덕이 사해에 진동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백성은 성은에 감복하여 나라를 위하여 더욱 열심히 일할 것입니다.”

양준이 이리 아뢰자 황문장군 부기가 아뢰기를

“양태부가 아뢴 대로 시행하자면 법도가 있어야 합니다. 먼저 유사에게 조서를 내리시고 중신에게 평의케 하여 그 결과를 참작하여 조처하옵소서.”
부기가 조리 정연한 의견을 내자 상서 위관이 양준을 향하여 말하기를

“지금 임금이 부왕의 상을 입은지라 신하된 자가 어찌 녹위를 논한단 말입니까? 전혀 이치와는 먼 말씀입니다. 하오니 양공께서는 이 같은 예법에 어긋난 말씀을 거두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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